반 다이크 │ 찰스 1세의 기마상 │ 1637년 ~ 1638년경 │ 런던 내셔널갤러리
Anthony van Dyck, Equestrian Portrait of Charles I, National Gallery, London

 

17세기 화가 반 다이크(Anthony van Dyck)는 1599년 플랑드르(Flandre)라 불리는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이미 십대 중반에 유명 화가의 반열에 올랐을 만큼 재능을 타고 났으며 바로크 회화의 거장 루벤스의 화실에서 일했고 젊은 나이에 이미 조수를 둔 화실을 운영했을 만큼 인기 화가가 되었다. 루벤스는 스무 살이나 어린 반 다이크를 그의 제자로 칭했으나 반 다이크의 연대기를 읽으면 제자라기보다 오히려 동업에 종사하는 동료에 가깝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된다. 1621년 스물두 살 때 이탈리아로 가 티치아노와 같은 르네상스 회화의 대작들을 접하며 작품 수준을 끌어올렸다.

 

1627년 이탈리아에서 안트베르펜으로 돌아온 반다이크는 왕실과 귀족, 교회의 주문으로 신화와 성서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그렸으나 주특기는 단연 초상화였다. 반 다이크는 "모델과 아주 닮게 초상화를 그렸지만(likeness) 한편으로 모델의 얼굴과 신체 중에 긍정적이고 매력적인 면을 최대한 끌어내 이를 강조한(improvement to likeness) 초상화를 그려서 초상화의 격을 평면적인 묘사의 대상에서 독자적인 생명을 가진 대상으로 만든다(living likeness)"는 평을 얻었다. 인기와 함께 주문이 이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반다이크의 인기에 매료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예술을 사랑한 영국 왕 찰스 1세였다. 찰스 1세는 1632년 런던을 방문한 화가로서 전성기에 접어든 젊은이 반다이크에게 기사 작위를 내리고 연금과 집을 약속하여 영국에 눌러 앉히는데 성공했다. 플랑드르의 화가 안톤 반 데이크(Antoon van Dijck)가 영국 귀족 앤서니 반 다이크 경(Sir Anthony van Dyke)이 된 것이다.

 

영국 왕실화가가 된 반 다이크는 찰스 1세 뿐 아니라 수준 높은 작품을 원하던 영국 귀족사회의 초상화 수요에 훌륭하게 부응했다. 그때까지 정형화 틀 속에 어색한 자세로 묘사되던 영국 초상화 수요자들은 반 다이크의 등장으로 화려한 바로크 초상화 시대를 경험하게 되었다. 반 다이크의 초상화 속에 표현된 인물의 자연스러운 구성과 자세, 우아한 시선처리, 풍부한 질감으로 표현된 피부와 의상 등에 왕실과 귀족들은 감탄했다. 특히 왕권이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절대 불가침의 권력이라는 왕권신수설의 철저한 신봉자였던 그리하여 절대왕권을 표상하는 시각적 완성을 보고 싶어 했던 찰스 1세의 기대에 반 다이크는 멋지게 부응했다. 현존하는 반 다이크의 초상화에 등장하는 찰스1세는 국사에 전념하는 이상적인 통치자, 기사도 정신으로 백성을 보호하는 무사, 교양과 매너를 갖춘 품위 있는 신사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그 중 압권 역시 런던 내셔널갤러리가 소장, 전시하고 있는 「찰스 1세 기마상」이다.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찰스 1세 기마상」은 높이 367cm에 달하는 대작으로 반 다이크의 작품을 따로 모아놓은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다. 화면 가운데 말을 탄 찰스 1세를 배치했는데 눈대중으로 가늠해보면 찰스 1세의 모습이 화면의 반을 차지하고 있어서 찰스 1세의 키가 180cm 정도 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평균 신장이 현대인보다 한참 작았던 17세기임을 감안해도 실제 찰스 1세의 신장은 160cm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이 점에서도 절대왕권을 상징하는 위세 초상화의 대작으로 손색이 없는 작품이다. 게다가 작품을 바닥에 세울 수는 없으므로 작품이 걸린 높이를 감안하면 등자에 끼운 찰스 1세의 발이 관람자의 눈높이에 딱 맞게 되어 있어서 작품 전체를 한 눈에 감상하자면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고 초상화를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초상화 속 찰스 1세는 긴 칼 차고 갑옷을 입은 채 튼튼하고 잘 빠진 말 위에 앉아 있으며 오른손으로 지휘봉을 쥐고 있다. 작품 오른쪽 아래에는 시종이 찰스1세의 투구를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배치해서 전사로서 또 군주로서 찰스 1세의 이미지를 잘 살린 초상화 작품의 걸작으로 바닥에서 천정까지 높이가 최소 4미터는 되는 내셔널갤러리 전시실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내셔널갤러리에 들릴 때마다 이 작품 17세기 영국의 군주 찰스 1세의 초상화를 우러러보면서 한편으로 매번 애잔한 마음이 들었던 까닭은 비극적인 결말을 미리 알고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역사 행간에 등장하는 많은 예술을 사랑한 왕들의 결말보다 찰스 1세의 결말은 더욱 비극적이었다. 찰스 1세는 재위기간 내내 한창 세력을 키워가던 영국 의회 권력과 충돌했다. 17세기 영국 사회는 영국 국교회와 카톨릭 그리고 청교도로 대표되는 신교도들 사이 종교적 사회적 갈등이 극에 달했는데 왕권신수설의 신봉자요 지위 상 영국 국교회의 수장이자 카톨릭을 옹호한 찰스 1세는 영국 의회 특히 하원을 장악한 청교도들과 물과 기름과 같은 사이였다. 유사 이래 갈등 없는 사회를 통치한 군주, 지도자가 어디 있다던가? 문제는 찰스 1세가 눌변이었던 데다 소심한 성격까지 가지고 있던 것으로 알려져서 당사자들을 만나 이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하기보다 본의였건 본의가 아니었건 외면하거나 무시하기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당사자 간 갈등을 더욱 고조시키는 여러 사건들이 불행하게도 복잡하게 꼬여 들기 시작했다. 반 다이크가 한껏 위세를 과시한 찰스 1세의 기마 초상화를 완성한 1638년에는 이미 찰스 1세를 지지하는 왕당파(Royalists)와 청교도들을 주축으로 의회를 지지하는 의회파(Parliamentarians)로 나라는 완전히 쪼개져 내전의 음산한 그림자가 서성대고 있던 시기였으며 그랬기 때문에 왕의 기마 초상화와 같은 위세 초상화가 더욱 필요한 시기였을 것이다. 이후 반 다이크가 런던을 떠나 고향 안트베르펜과 파리에 몇 달씩 머문 기록이 남겨진 것도 당시 영국의 정세와 무관 크게 무관치는 않으리라. 1641년 마흔 하나 한창 나이에 반 다이크는 갑작스런 발병으로 런던에서 사망했다. 1642년 영국은 마침내 7년간 피비린내 나는 오늘날에는 청교도 혁명이라 불리는 내전(English Civil War)을 겪게 되었으며 패전한 찰스1세는 1649년 의회파에게 붙잡혀 목이 잘리는 참수형을 당하고 말았다.

 

17세기는 물론 오늘날까지 비록 상징적이나 엄연히 현존하는 영국 왕실은 반 다이크의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컬렉션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왕과 왕가를 위해 작품 활동을 한 궁정 수석화가였던 반 다이크의 이력을 생각하면 당연하다. 그런데 런던의 그 많은 왕가 궁전을 두고 왜 하필이면 영국 국민이면 모를 사람 하나 없는 심지어 이방인인 나까지 비극적인 결말을 꿰뚫고 있는 찰스 1세의 기마 초상화를 영국 국민은 물론이려니와 나 같은 이방인에게까지 무료로 작품을 공개하는 내셔널갤러리에 전시하고 있을까? 이 작품을 내셔널갤러리에서 몇 차례 직관할 때 마다 품을 수밖에 없는 의문이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제법 세월이 흐른 요즘 돌이켜 보니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역사적으로 청교도혁명이라 부르는 그 사건 이후 같은 국민들끼리 패를 나누어 죽이고 죽는 내전의 비극을 다시는 영국이 겪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직도 영국 왕실이 온전히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 해봤다. 왕가의 위세를 드높이기 위해 반 다이크에 의해 그려진 찰스 1세의 위세 초상화는 오늘날 런던 내셔널갤러리의 전시실에 걸려 영국 왕가에, 국민들에게, 작품을 관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국민에게 등을 돌리는 권력의 최후를 빼어난 회화 작품으로 증거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루벤스가 그린 반 다이크의 초상화 │1627년 ~ 1628년 경 │ 영국 왕실 소장

Peter Paul Rubens, Anthony Van Dyck, Royal Collection Tr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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