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다이크 │ 존 스튜어트 경과 동생 버나드 스튜어트 경 │ 1638년 경 │ 런던 내셔널갤러리
Anthony van Dyck, Lord John Stuart and His Brother, Lord Bernard Stuart, National Gellery, London
오늘날 사진 스튜디오에서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을 기념하며 찍은 멋진 스튜디오 사진같이 작품 속 두 청년은 형제 사이로 영국왕 찰스 1세의 사촌이며 왕족인 존 스튜어트와 버나드 스튜어트, 두 사람을 담은 전신 초상화 작품이다. 작품의 제작 년도는 1638년경으로 추정되는데 이때 한 살 터울이었던 형제는 각 만 열 일곱과 열 여섯 살이었으며 다음 해 1639년 유럽 대륙으로 삼 년간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반 다이크에게 의뢰된 초상화가 아닐까 추측된다. 중세 그리고 근대 유럽에서는 왕가 간 정략을 감안한 무수한 통혼 관계로 설키고 설키어 글로 읽어 인척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도표로 그려내기조차 쉽지 않다. 친가가 되었건 외가가 되었건 형제는 친척 나라를 한 바퀴 돌고 올 참이었을 것이다.
작품은 형인 존 스튜어트를 살짝 높은 곳에 동생 버나드 스튜어트를 낮은 곳에 배치해서 형제 간 손 위 아래 관계를 자연스럽게 드러내게 했으며 형은 따뜻한 느낌이 드는 갈색 옷을, 반면 동생에게는 차가운 느낌이 드는 파란색 옷을 입은 것으로 표현해서 시각적 대비와 함께 두 사람의 성격을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했다. 특히 두 형제가 입은 비단 계열의 최고급 섬유인 새틴(satin) 재질 의상의 구김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표현하고 이 흐름에 두 사람의 팔과 손 동작을 연결시켜 정적인 초상화 작품에 역동성을 가미한 반 다이크류 초상화 작품의 또 하나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초상화에 표현된 느낌과 달리 상대적으로 차분한 모습으로 표현된 형 존 버나드는 사실 성격이 매우 거칠어서 궁정 생활을 견디기 매우 힘들어 했으며 무술에 매우 능했다고 하며 반대로 매우 당당해 보이는 동생은 매우 온화한 성격을 가졌다고 한다.
형제를 위해 멋진 초상화를 남긴 반 다이크는 약 2년 뒤인 1641년 겨울 런던에서 마흔 둘을 일기로 삶을 접었다. 그리고 형제가 유럽 대륙 여행을 끝내고 언제 영국으로 돌아왔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귀국 후 형제는 청교도혁명과 관련된 영국의 내전(English Civil War)에 휩싸이게 된다. 국왕 찰스 1세(King Charles I)의 사촌이었던 이들 형제가 왕권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킨 의회파를 진압하기 위한 왕당파로 참전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을 것인데 두 형제는 각각 스물 셋, 스물 둘 그야말로 꽃다운 나이에 전사하고 말았고 찰스 1세도 내전 끝에 패전하여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이 이끄는 의회파들의 의해 참수 당하는 비극을 맞고 말았다. 그래서 내셔널갤러리 전시작품을 소개하는 책에서 저자는 애초 이 초상화를 그릴 때 화가인 반 다이크도, 모델로 선 두 형제도 그들의 미래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겠지만 ‘이 초상화를 보면 슬픔을 느낄 수 밖에 없다.’고 표현해놓았다. 그것은 아마 작품을 둘러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입이 될 만큼 이 초상화가 예술적 완성도가 그 만큼 높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반 다이크의 자화상 │ 제작년도 미상, 17세기 초 │ 벨기에 앤트워프 루벤스하우스
Anthony van Dyck's self Portrait, Rubenshuis Antwerp, Belgi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