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만큼 수명이 긴 새가 있다. 이 새가 성체가 되기까지는 오 년, 심지어 십 년 이상 걸리고 그래서 이 기간 동안 부모가 새끼를 돌보고 키워야 한다. 성체가 되었다고 바로 짝짓기를 하는 것도 아니어서 무리 속에서 오래도록 구애활동을 하고 참으로 어렵게 짝을 찾은 새는 그 짝과 평생을 해로한다. 북반구에서는 이 새를 볼 수 없다. 한반도에서도 결코 이 새를 볼 수 없다. 이들은 남반구의 먼 바닷가에 둥지를 치고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간다. 알바트로스(albatross)라는 새다.

알바트로스는 이십 여 종(種)으로 분류되며 종에 따라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큰 종의 경우 날개 길이가 무려 3m 이상 나가는 무척 큰 새다.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기사에 따르면 알바트로스는 살아있는 비행체 그 자체다. 새인 주제에 사람처럼 알바트로스는 큰 체격 때문에 날갯짓만으로 지구 중력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닐 수 없다. 알바트로스는 반드시 바람이 불어야 그 큰 날개를 펼쳐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다. 그들이 먼 바다의 고립된 섬에 깎아지른 절벽 위에 둥지를 트는 이유다. 맞바람을 받아 하늘 높이 날아오른 알바트로스는 날갯짓을 하지 않고 글라이더가 활강하는 그 원리대로 먼 바다까지 나이가 먹이 활동을 한다. 적도 근처 태평양 갈라파고스 섬에 둥지를 친 알바트로스는 남미 대륙의 끝 마젤란 해협까지 날아가고 뉴질랜드에 둥지를 친 알바트로스는 남극대륙을 한 바퀴 도는 비행을 한다. 알바트로스는 철새가 아니다. 그저 그들의 일상 활동 반경이 그렇다는 것이다. 북태평양의 외딴 섬을 서식지로 하는 알바트로스가 있기는 해도 북반구에서 알바트로스가 거의 살 지 않는 이유를 과학자들도 아직 정확히 밝혀내지는 못했다. 다만 아주 오래 전 지구 간빙기의 영향으로 해수면이 높아지자 북반구 바닷가에 면한 알바트로스의 서식지가 바닷물 속에 잠겨 버렸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지구 적도에는 적도 무풍대가 있다. 알바트로스는 바람이 불지 않는 적도 무풍대를 넘어 북반구로 날아갈 수 없다. 바람이 불지 않는 고요한 바다 위의 알바트로스는 바람이 다시 불 때까지 해수면에 꼼짝없이 머물러 있을 수 밖에 없다. 해수면 위에 더러 약한 바람이 불 때조차 알바트로스는 다른 새들처럼 창공으로 곧장 날아 오를 수 없고 마치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날아오르듯 한참을 달려나가 날개에 충분한 양력이 실려야만 창공으로 날아오를 수 있다. 사람들에게 간섭 받지 않고 남반구에서 수천 만년을 자연에 의지한 채 삶의 터전을 이어오던 알바트로스는 지구의 남반구에 사람들이 물밀듯 밀려 들어가 남반구를 개척하기 시작하자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오늘날 몇몇 종들은 심각한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사람들은 깃털을 얻기 위해 또는 비행기 교통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알바트로스를 몰살시키기도 했고 심지어 유럽에서 남반구로 향하던 이민선 위에서는 사람들이 재미로 날아다니는 알바트로스를 총으로 쏘아 떨어뜨리는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이 야만적인 시대가 종언을 고한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멋진 새를 관찰하고 보호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와중에도 사람들이 남반구 외딴 섬으로 사람들이 가져온 고양이 같은 외래종 때문에 알바트로스의 알이나 새끼가 죽어가고 있으며 낚시바늘에 미끼를 끼워 고기를 잡는 대형 주낙어선이 바다 위에 깔아놓은 낚싯줄 때문에 알바트로스는 큰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다.

얼마 전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발견한 한 장의 사진, 큰 날개를 활짝 펴고 멋지게 활공을 하는 한 마리 알바트로스의 사진을 보는 순간 큰 감동이 일었다. 이어지는 알바트로스의 생태에 관한 기사를 읽는 동안 언젠가 꼭 이 새를 한번 보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가 생겼다. 살아있는 비행체, 사람만큼 살고 사람처럼 살아가는 새는 단단히 내 마음속에 둥지를 트고 앉아버린 것이다. 하지만 기사를 읽을수록 알바트로스의 삶이 결코 자유롭지 못할뿐더러 한편으로 고단하기 짝이 없는 삶임을 알았다. 그럼에도 알바트로스에 대한 동경을 거둘 수 없는 이유는 ‘그들도 우리처럼’ 고단하기 짝이 없는 삶을 어가고 있다는 역설 때문인지 모르겠다. 저 드넓은 바다 위에서, 저 드높은 창공 위에서.

이미지 및 기사 출처 : National Geographic, translated into Korean by HWP 

살빈 알바트로스가 하늘과 하나가 되어 유유히 활공하고 있다. 2.4m 길이 날개는 뉴질랜드 해안에 거세게 몰아치는 강풍 속을 비행하기에 적합하도록 멋지게 꺾여 있다. 녀석 앞에는 생존을 위협하는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 대부분 사람 때문이다.

어린 알바트로스들이 캠벨 섬에서 "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빠른 속도로 날며 대양을 횡단할 수 있도록 적응된 알바트로스에게 땅에 내려앉는 것은 만만찮은 일이다. “땅에 내려앉기 전에 알바트로스는 하늘에서 여러 번 맴을 돌곤 해요.” 뉴질랜드 환경보존 학자 피터 무어의 말이다. “폭풍우 치는 날, 새 한 마리가 내 옆을 스쳐 지나며 공중제비를 도는 걸 본 적이 있어요." 단 한번의 착륙 실수로 알바트로스는 날개가 부러져 죽을 수 있다.

쇼핑몰에 모인 십대들처럼 뉴질랜드 캠벨 섬에서 어린 로열 알바트로스들이 서로 어울리고 있다. 수컷들의 과시 행동에 이어 암컷들이 길고 날씬한 날개를 펼치며 자태를 뽐낸다. 번식을 하려면 3년에서 9년 더 있어야 하지만 평생의 반려자를 찾기 위해 이런 ‘사교’ 시간을 갖는 건 필수적이다.

포클랜드 제도의 이 검은 눈썹 알바트로스는 사진기자 프랜스 랜팅이 곁에 있도록 허락해줬다. 몇 시간을 기다려 겨우 찍은 이 한 장의 사진은 부부 알바트로스의 역할 분담을 잘 보여준다. 한쪽이 해안에 남아 둥지를 짓는 동안 다른 한쪽은 바다 위를 날며 먹이를 구한다.

이 회색 뺨 알바트로스를 포함해 북태평양에 서식하는 알바트로스는 육지에서 어기적거리는 모습 때문에 ‘바보새’라고 불린다. 하지만 “하늘 위에서는 절대 바보가 아닙니다. 그저 엄청나게 놀라울 따름이에요.” 시속 128km로 나는 알바트로스들을 위성으로 추적해 온 캘리포니아대학교 연구원 스콧 셰이퍼의 말이다. 제 몸 뚱아리만을 이용해서 시속 128km 속도로 하늘을 나르는 새다, 알바트로스.

수십만 마리 검은 눈썹 알바트로스들이 스티플 제이슨 섬으로 날아와 진흙으로 높게 쌓아 올린 둥지를 짓고 다음 세대를 길러낸다. 하지만 집단번식지들의 규모는 예전에 비해 엄청나게 줄어 들었다. 남극해에서 주낙 어업과 저인망 어업으로 너무 많은 수가 희생되자 2003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검은 눈썹 알바트로스를 멸종 위기종으로 선포했다.

전 세계 검은 눈썹 알바트로스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약 39만 9000쌍이 포클랜드 제도에서 번식 한다.

동물에게 인간이 느끼는 것과 같은 이성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사진 한 장을 보고 있으면 최소한 알바트로스에게는 그런 감정이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포클랜드 제도에서 검은 눈썹 알바트로스 암컷(오른쪽)이 목을 맡기자 수컷이 "살짝살짝 깨물어 준다." 암컷의 저 눈빛을 보라.

처음엔 인사로 시작한다. 그러곤 가만히 응시한다. 그러다가 발끝으로 서서 서로 부리를 맞댄다. 이어 꽥꽥거리며 다정하고 요란하게 탱고를 춘다. 두 마리 모두 발목에 연구용 발찌를 차고 있는 이 수컷(오른쪽)과 암컷처럼 턴 섬에 사는 검은 발 알바트로스들은 번식하기 전에 이렇게 서로 만나 춤을 추고 함께 둥지를 지으며 여러 계절을 보내면서 20년 넘게 지속될 유대를 다지는 것으로 보인다.

거센 바람이 남대서양을 휘저으며 거대한 한 파도와 롤러코스터 같은 난기류를 일으킨다. 알바트로스는 이런 높은 파도를 비껴 흐르는 기류를 타고 날아올랐다가 다시 수면으로 급강하하면서 하루에 800km 이상을 여행하는 것으로 위성추적 결과 밝혀졌다. 하루 800km 날아 다닌다, 알바트로스.

아름다운 바다, 그 바다 위에 떠 있는 무지개, 그리고 낚시줄에 달린 미끼를 향해 달려드는 알바트로스, 알바트로스가 낚싯줄의 미끼를 잡아채는 순간 알바트로스는 죽는다. 한 장이 사진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는지 내게 증명한 사진이다. 인간이 알바트로스에게 미치는 위험을 줄일 방법이 있다. 긴 낚싯줄에 밝은 색깔 리본을 달아(아래) 놓으면 아무리 배고픈 알바트로스라도 상업 어선들이 쳐놓은 치명적인 그물과 낚싯바늘에 접근하지 못한다. 이런 방법은 비용도 적게 들면서 매년 약 30만 마리의 바닷새를 구할 수 있다.

로열 알바트로스가 3.5m나 되는 긴 날개를 기울인 채 캠벨 섬의 높은 산등성이를 따라 빠른 속도로 날고 있다. 뉴질랜드의 과학자 피터 무어는 말한다. “이 멋진 피조물이 그들의 고향인 하늘을 마음껏 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벅차 오르면서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됩니다.” 나도 이 멋진 피조물을 보고 같은 감동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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