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2018. 12.
어쩌다 연말에 제법 긴 휴가를 가지게 되어 그저 집구석에서 그림이나 끄적거리며 보냈는데 도저히 좀이 쑤셔 안 되겠다 싶어서 소박한 나들이 삼아 어제 크리스마스에 찾아간 곳이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이었다. 미술관 1층에서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한 전시 작품을 둘러보고 미술관 매점에서 아메리카노 커피 한 잔 마시니 이제야 좀 살겠다 싶어서 미술관 2층으로 올라갔는데 그곳에서 『이스트빌리지 뉴욕: 취약하고 극단적인』이라는 테마의 미국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들을 보게 되었다.
이스트 빌리지(East Village)는 미국 뉴욕 맨해튼(Manhattan)에 속하는 특정 구역으로 도심 개발에 따라 한때 슬럼화 되다시피 한 곳으로 1980년대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가난한 이웃들 틈에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한 곳이라 한다. 그런데 뉴욕 도심의 개발이 지역까지 뻗쳐와 오늘날 이 땅에서도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다시피 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 극심한 곳으로 변모했고 요즘의 뉴욕 이스트 빌리지라면 “…우리가 보기에 자유와 패기 넘치는 뜨거운... ‘쿨’하고 ‘힙’한 예술…”의 거리로 쳐주는 모양인데 그곳에는 고단한 삶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이를 표현한 미술 작품들로 이번 전시를 꾸몄다는 것이다. 다만 전시 기획으로 설명하는 시대정신이니 예술실천이니 하는 것을 내 머리 속에 담고 작품들을 감상하기에 내 일상이 너무 벅차니 그런 것들은 잊고 그저 눈에 보이는 작품의 윤곽과 색감을 즐기다가 그저 우연히 흥미로운 연작 사진 작품 3점이 있어서 크리스마스 날 서울시립미술관 관람로 몇 자 남긴다.
사진 속 인물은 홍콩 출신으로 캐나다에서 성장한 작가 자신으로 우리는 모택동식 인민복으로 알고 있는 이른바 마오 슈트(Mao suit)를 입고 파리의 에필탑 앞에서,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 앞에서 그리고 뉴욕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셀카를 찍은 것들 이었다. 이 사진들은 묘하게도 자본주의보다 더욱 자본주의적인 오늘날 사회주의 국가 중국의 이미지와 묘하게 겹쳐 보였다. 기껏 11번가는 세입자들이 접수하겠다는 헤진 블록 담장에 락카 스프레이로 칠해진 약자들의 저항도 못 되는 꿈틀거림 끝에 존재(EXIST)가 퇴출(EXIT)이 되는 결말은 나중에 중국 대도시의 어느 골목을 그린 미술 작품으로 등장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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