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
2014. 2. 15.

 

지난 겨울 경복궁 옆 서촌 일대를 돌아다니다 박노수미술관이 옥인동에 있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통인시장 골목에 있는 탕수육이 맛나기로 이름난 중식당에서 탕수육에 짬뽕 국물을 안주 삼아 거하게 낮술을 걸쳤기로 술도 깰겸 소화도 시킬 겸 미술관을 찾아 걸어가는 내 갈짓자 걸음이 아주 가관이었으리라. 지도 앱의 도움을 받아 십 분 정도 걸어 미술관 앞에 서니 마침 휴일을 맞아 미술관을 찾은 사람들이 꽤 많았다. 입구에 서 있는 안내판을 읽자니 집과 미술관에 얽힌 사연은 이렇다.

 

미술관 건물은 한국화가인 박노수 화백이 살던 주택이었다 한다. 이 주택은 대한제국 말기에 고급 관리로 일하다 이완용과 함께 일제의 국권 침탈에 적극 협력한 윤덕영이 그 딸을 위해 건축가 박길용에게 설계를 의뢰, 1937년에 건축된 가옥이라는 것이다. 안내에 의하면 가옥은 우리 전통 건축양식과 중국식, 서양식 등이 결합된 절충식이라 하나 건축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로 실내 바닥에 깔린 나무를 걷어 내고 다다미를 깐다면 영락없이 내가 아는 일본 양식 가옥으로 보였다. 애초의 건물주였던 윤덕영은 일제의 국권 침탈에 협력한 대가로 일제로부터 귀족 작위를 받았을 뿐더러 추한 논공행상 끝에 한 재산 단단히 거머쥔 위인이며 또 건물이 선 시대가 일제의 강점기였다는 점을 생각해도 절충식 어쩌고 하는 안내는 아무래도 옹색하다. 그렇다고 이 건물을 싸그리 밀어버렸어야 했을까? 부끄러운 역사도 역사고 부끄러운 일이 있었을 때 부끄러웠다고 알려야 그 역사는 의미가 있는 것이리라. 박노수 화백은 1973년에 이 가옥을 구입하여 살다가 2011년 소장중인 본인 작품과 함께 서울 종로구에 기증하여 구립 미술관으로 개관하였다는 것이다. 한국화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 미술관 내 전시된 박노수 화백의 작품에 대해 따로 첨언을 달지 못하겠다. 다만 전 세기 전란과 무차별 개발의 와중에 깡그리 사라지다시피 한 이 땅의 옛 건물 중 이 만큼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건물이 달리 어디 있겠으며 들어선 사연이야 어찌 되었건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물을 공공에 기부하여 공유하겠다는 박노수 화백의 유지는 이 땅에 이런 전례가 있었던가 곰씸어 보게할 정도로 귀한 것이라 못 찍은 사진 몇 장과 함께 잡문이나마 이야기로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사십년 손때가 묻은 살던 집을 공공에 기증한 박노수 화백은 2013년 미술관의 개관을 앞두고 예순 일곱을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한다. 그 분이 생전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떤 작품 활동을 하셨는지 잘 알지 못하겠고 팍팍한 일상에 늘 매몰되어 사는 처지로 달리 한국화에 관심을 가질 것 같지도 않다. 하지만 지난 겨울, 휴일을 맞아 생전 그분이 살던, 이제는 미술관으로 바뀐 종로구립박노수미술관을 찾은 많은 사람들의 발길과 그들의 행복한 시선 속에서 한 사람이 바른 마음을 가지고 살다 간다는 의미를 생각해보니 가옥 앞 마당에 평소 고인이 모아 둔 수석들을 쳐다보는 내 마음까지 삽상했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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