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지하철 2호선에서 겪은 자칫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을 뻔한 급똥이라는 돌발 사태에 식겁한 경험을 포스팅 한 후 오래 전 영국 생활 중 겪은 유사 경험을 옮겨 놓은 묵혀둔 글이 떠올라 애써 찾아 포스팅 한다. 그저 잡문이지만 그래도 읽어주실 분들은 아래 짧은 유투브 동영상 클립을 먼저 감상하시기 바란다.

급똥 오브 레전드 1편

급똥 오브 레전드 2편

"급똥 오브 레전드”라는 제목의 영상을 유튜브에서 봤다. 너무 웃어서 눈물이 쏙 빠질 뻔 했다. 상황에 걸 맞는 리얼한 대사가 이 애니메이션의 백미로 우선 꼽을 만 하겠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경상도 사투리 대사가 이 애니메이션을 더욱 코믹하게 만든다는 의견들을 내어놓고 계시던데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시는 의견들이 아닌가 한다. 수도권을 제외하고 우리나라에서 면적이 가장 넓고 상주인구가 많은 광역 지방자치단체는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를 합한 통칭 경상도인데 사실 경상도는 그 규모만큼이나 스펙트럼도 다양해서 예를 들어 경남 남해에 사시는 어느 분이 경북 문경에 사시는 어느 분과 함께 ‘경상도 사람’이라 도매끔 취급을 받는다면 그 분들은 속으로 ‘그기 아인데…’라는 생각을 품을 것이다. 물론 두 분의 차이는 사투리에서도 분명하게 갈려서 이 두 분을 앞에 놓고 서로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된다면 이분들이 과연 같은 경상도 분들인가 의구심을 가지게 되리라.

 

잡설을 이어 나가기 전에 우선 내가 부산 토박이라는 점과 내가 지방별로 다른 사투리를 구별해내는 잡다구리한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밝혀야겠다. 이런 나의 흥미에서 나온 관찰 결과로 판단하건대 경남과 경북의 사투리 차는 거론할 여지조차 없고 부산을 포함하여 경남 내에서도 지역별 사투리는 제법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즉 부산을 포함한 경남의 사투리는 진주 인근의 서부 경남, 마산 인근 지역, 부산 그리고 울산 인근의 동부 경남 사투리가 각각 구별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급똥으로 급히 되돌려 내가 듣기로 급똥의 대사는 경상도가 아닌 그리고 경남도 아닌 완벽하게 구사되는 부산 사투리를 기반하고 있으며 이 점이 사람들의 흥미를 더욱 유발시키는 요인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내게 급똥의 대사가 생동감 있게 들릴 이유는 충분했던 것이다.

 

사투리뿐 아니라 급똥에서 그리는 상황 또한 너무 현실감이 있다. 급똥은 단순한 낱말 속에 매우 미묘하고 복잡한 상황을 함의하고 있다. 즉 급똥은 '갑작스럽게 똥이 마렵다 혹은 똥을 눈다’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똥이 마려운 상황임과 동시에 그 상황을 해소하기 어려운 매우 긴박하고 위급한 상태를 복합적으로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의학적으로 술을 즐기는 사람들이 급똥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내게 해당 있는 사항일 뿐 아니라 의학 용어로 과민성대장증세, 즉 과도한 긴장 혹은 신경 집중 순간에 똥이 마려운 급똥증후군을 겪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위 유튜브 짤이 그리는 한계 근처까지 익히 도달해본바 있는 나로서는 그 다급한 그리고 안타까운 동정이 절로 일어나는 상황에서 어찌 웃음이 터지지 않겠는가? 내가 알기로 경중의 차이가 있기는 해도 많은 사람들이 과민성대장증세를 겪고 있다 하니 이 유튜브 짤을 보고 심히 공감하는 분들이 매우 많을 것이라 믿으며 이 공감이 바로 급똥의 인기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무슨 인권 헌장에 나와 있는지 모르겠고 머 딱히 알아볼 생각도 없지만 굶지 않을 권리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인간의 기본권 중에서도 기본권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사람은 먹으면 반드시 배설을 즉 싸야 한다. 과민성대장증세로 생활의 불편을 겪고 있는 나는 이 싸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언제 어디서나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쾌적한 환경에서 배변할 권리, 인간답게 똥 눌 권리 역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중요한 기본권의 하나로 간주하고 있다. 문제는 지금 내가 체류하고 있는 영국이라는 나라가 일찍이 인권에 눈을 떠 다른 어떤 나라보다 인간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많은 제도들을 다른 어느 나라보다 먼저 정착시킨 이 나라가 인간답게 똥 눌 권리에 무척 인색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런던 대부분의 지하철역에는 화장실이 없다. 시내 중심부 일부 대규모 환승역에는 화장실이 있기는 해도 이 화장실 역시 대부분 유료 화장실이다. 화장실 1회 이용에 드는 요금은 대략 30펜스, 우리 돈으로 500원 정도에 상당한다. 돈 없는 사람은 갑작스럽게 닥치는 배변 욕구를 어떻게 해결하라는 말인가? 돈 없으면 똥도 누지 말라는 것인가? 먹는 것이야 집에 가서 먹어도 되지만 급똥 상황은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인간다움을 잃는 참사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위 유튜브 짤이 잘 보이고 있지 않은가?

 

예측 가능한 참사는 대비를 철저히 함으로써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나는 우리나라에 있을 때 내 동선을 따라 어디에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지 즉 어디에 지하철역, 주유소, 대형마트, 공공기관 등이 위치해 있는지는 숙지하고 다녔다. 영국의 사정은 지하철역의 경우야 앞서 설파한 바와 같고 주유소의 경우 고속도로 휴게소 외에 화장실의 자유로운 이용을 보장하는 주유소는 영국에서 아직 찾지 못했고 웬만큼 규모가 큰 마트가 아니고서야 소중한 고객들에게조차 화장실의 자유로운 이용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 사정은 런던과 같은 대도시로 갈수록 더욱 야박해진다는 점도 익히 간파한 바이다. 공공기관의 화장실 제공 사례는 말 할 것도 없는지라 그냥 패쓰 하겠다. 게다가 가뭄에 콩 나듯 발견할 수 있는 공중화장실의 청결 상태는 한마디로 ‘쉣(shit)!’이라는 말이 딱 맞다. 이 쉣한 상황을 세세히 묘사하자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사이버 테러를 가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이 선에서 걍 접기로 하겠다. 쉣이란 어떤 상황인가? 관심 있는 분, 영어 사전 찾아보시기 바란다.

 

우리나라는 화장실 제공을 공공 서비스의 패키지 개념으로 일찍이 도입하여 인간다운 기본권 보장에 매우 선진적인 모범 사례를 보이고 있건만 선진국 중에 선진국으로 불리는 영국이 이 인간의 기본권 보장에 미흡하다는 점은 영국에 체류하며 유감 중에 유감으로 매우 안타까께 생각하고 있다. 그리하여 아직 묻지는 못하였고 끝내 묻지 못하겠으나 급똥 짤을 보고 나서 영국인 동료 직원들에게 ‘니들은 대체 급똥 상황이 닥칠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 묻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끼며 근질거리는 입을 진정시키느라 혼났다. 영국의 이러한 어려운 사정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특히나 영국의 숙녀분들께 더욱 애잔한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영국의 화장실 인심은 왜 이렇게 박한가? 그리하여 인간의 기본권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가지게 하는 것인가? 나름 생각해보기로 영국의 고물가 구조가 한몫하고 있지 않나 싶다. 공공 화장실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데는 분명 상당한 인력과 비용이 소요될 것이고 물가와 인건비가 비싼 영국에서 무턱대고 공공 화장실을 무료로 제공하기에는 분명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겠다. 우리 ‘대한민국’ 성년남자들 대부분은 그 유명한 화장실 욕쟁이 아줌마의 신공에 대한 전설을 공감하고 있으리라 본다. 그 화장실 욕쟁이 아줌마가 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는 분이라는 점에 대한 공감이 적다는 것이 아쉽고 우리나라의 화장실 욕쟁이 아줌마와 같은 열악한 노동환경 및 저임금을 용인하지 않는 영국의 사회구조가 영국의 화장실 인심을 박하게 만들었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인간답게 똥 눌 권리와 화장실 욕쟁이 아줌마의 인권 이 조합을 두고 잠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하는데 이러다 아랫배가 살살 아플 것 같아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고 이 영국의 야박한 화장실 인심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했더니 프랑스와 독일과 같은 유럽 대륙의 화장실 인심은 더욱 야박하다고 이구동성이었다. 이는 비록 짧은 여행으로 프랑스와 독일을 다녀왔지만 나 역시 느꼈던 바이기도 하다는 점만 덧붙이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과민성대장증세를 겪고 있는 내가 화장실 인심이 야박한 영국에서 어떻게 위기를 모면하며 살고 있는가? 다행스럽게도 영국에서의 출퇴근 시간이 20분 남짓 소요되는 짧은 거리라 그 정도 시간 간격이면 돌발 상황이 닥치더라도 인간다운 품위를 잃지 않고 버텨낼 수 있을 뿐 아니라 런던에서 지하철을 이용하는 경우 언제나 10펜스, 20펜스 짜리 동전을 골고루 혼합하여 주머니에 항상 소지하고 다니고 있다는 점을 밝혀야겠다. 예측 가능한 참사는 철저한 준비로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환경이 다소 불리하더라도 인간은 환경 변화에 매우 뛰어난 적응력을 보이는 존재라는 것을 영국에서 다시금 확인하면서 말이다. 이달 초, 11월 4일을 기준으로 영국의 일광시간절약제, 즉 썸머타임이 끝이나 하루해는 더욱 짧아져서 오후 네 시가 되기 전에 어둠이 깔리고 있다. 이 기나긴 영국의 겨울밤을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하면 우울증 걸리기 딱 쉽다는 것 역시 지난 두 해 영국에 체류하며 경험으로 터득한 바인데 애니메이션 급똥은 짧은 순간이기는 하지만 나의 세 번째 영국 겨울나기에 유쾌한 자극을 주기에 충분했고 이 지저분하고 영양가 없는 잡설 또한 긴긴 밤 영국에서 겨울나기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처절한 자기극복의 발악임을 헤아려 주시고 측은지심을 느껴 주시는 독자 제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리는 바이다. 2013

'○ 영국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윈저성  (0) 2019.03.14
런던 빅 벤  (0) 2019.03.06
런던 뱅크  (0) 2019.01.03
리젠트 스트리트  (0) 2018.12.16
영국왕립미술원  (0) 2018.12.1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