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몽마르트르
Montmartre, Paris, France
2013. 5. 3.
파리하면 몽마르트르(Montmartre)다. 몽마르뜨라고도 하고 몽마르트라고도 한다. 영국 살 때 우리 가족은 영국과 프랑스 사이 도버해협 아래 해저터널을 통해 차를 몰아 파리 유람에 나섰고 영국에서 프랑스 파리까지 몰고 간 차를 파리 서쪽 뤼에유말메종(Rueil-Malmaison)에 있는 노보텔 주차장에 세워두고 지하철 타고 몽마르트르에 도착 그 언덕에서 파리 시내를 굽어봤다. 돌이켜 생각하니 초행인 파리 시내 곳곳을 아내와 아이 데리고 지하철 버스 타고 구경 다녔다는 것이 놀랍다.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 파리는 지리적으로 드넓은 서유럽 평원지대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어서 해발고도 130m의 낮은 산이라 부르기조차 부끄러운 언덕 몽마르트르는 파리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몽마르트르가 파리 시역에 포함된 것은 1860년이었다. 파리 시역에 포함되고 나서도 한동안 파리의 달동네였다. 19세기 후반 서유럽의 회화는 파리에서 만개했고 재능 있는 화가들이 파리로 모여들었다. 가난한 화가들이 파리 달동네 몽마르트르에 거처를 잡고 화실을 열었다. 19세기 후반 몽마르트르와 인연을 맺은 화가들의 면면이 궁금해서 검색했더니 고흐, 마티스, 드가, 로트렉, 듀피, 르느와르, 모딜리아니 심지어 피카소까지 그야말로 기라성 같다 할 화가들의 이름이 보인다. 그 무렵 몽마르트르의 분위기를 가장 잘 살린 그림은 유명한 「물랭 드 라 갈레트에서의 야외무도회」(Bal du moulin de la Galette)라는 르느와르의 1876년 작품인데 이 작품은 역사적으로 아름다운 시절(Belle Epoque)로 통하는 1871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의 종전부터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개전 사이 서유럽의 경제적 문화적 전성기의 분위기를 가장 잘 살린 작품으로도 꼽힌다. 물랭은 풍차라는 프랑스어 낱말인데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갈레트라는 이름의 풍자가 서 있었다. 그 갈레트 풍차를 그림으로 남긴 「갈레트의 풍차」(Moulin de la Galette)라는 고흐의 작품도 전하는데 고흐의 그림이 가난한 화가들의 고향, 한적한 몽마르트르의 19세기말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하철역에서 몽마르트르 언덕 꼭대기까지 이어진 완만한 경사길 주변에는 끝도 없다 싶을 만큼 조잡한 관광기념품 가게가 줄을 이었고 그 사이 사이 호객하는 시커먼 흑형들이 진을 치고 관광객들을 맞았으며 그 난관들을 헤치고 마침내 몽마르트르 언덕 꼭대기에 섰을 때 전면에 웅장한 성당이 우리 가족을 맞았다. 1871년부터 건설이 시작되어 1919년에야 완공된 사크레 쾨르(Sacre-Cœur)성당으로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 희생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성당이라 한다. 전쟁으로 상처를 입은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성당은 필요했겠지만 그 성당이 몽마르트 언덕 보다 더 낮은 곳에 임했더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성당 앞 광장에서 내려다보이는 파리는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이 몽마르트르 언덕이겠거니 아름답고 감개무량 했다. 이곳저곳 찍으며 파리의 명소를 다 둘러보아야 하는 짧은 여행길 몽마르트르에서의 일정을 서둘러 마무리 하고 오후에는 유명한 개선문 꼭대기에 올라가 파리 시내를 조망했다. 개선문 위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시차를 이용하여 에펠탑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 사진 찍기에 열심이었는데 나는 개선문 위에서도 잘 보이는 몽마르트르 언덕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몽마르트르 언덕위에 묘지가 있고 그 묘지에 드가와 에밀 졸라의 무덤이 있다 하고 창밖으로 갈레트의 풍차가 보이던 테오와 빈센트 고흐 형제가 세 들어 살던 집이 있다 하며 르느와르 그림 속 르 물랭 드 라 갈레트는 아직도 그 자리에서 레스토랑으로 성업 중 이라는데 몽마르트르 언덕 위에 성당과 건물이 빼곡히 들어차 멀리서는 그 흔적조차 가늠해볼 수 없었다.
요즘 못 찍은 옛 사진들과 블로그 포스팅을 정돈하고 있다. 마음 둘 곳이 마땅치 않다는 뜻이다. 파리와 파리 주변 베르사유, 퐁텐블로, 콩피에뉴, 피에르퐁으로 이어진 그 해 짧은 프랑스 여행은 못 찍은 사진으로 남아 폴더에 가득하다. 그 사진들 중 일부는 잡문과 함께 블로그에 올라와 있고 일부는 그저 내 기억의 단편들로 남을 것이다. 가끔 못 찍은 사진, 의미 없는 잡문들을 귀한 시간 들여가며 꾸역꾸역 올려놓는 이유를 자문해보는데 쉽게 자답을 찾지 못하다가 며칠 전 책에서 그 힌트를 찾았다. 우리 삶이 허접해지는 이유는 할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가 없는 삶은 초라하다. 못 찍은 사진들과 잡문들은 나의 아름다웠던 시간에 대한 소회요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며 내 이야기다. 어느 해 봄 체리가 익어갈 무렵(Le temps des cerises) 나는 파리 개선문 위에서 몽마르트르 언덕을 바라보고 있었다.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르와 그 주변
2013. 5. 3.
Montmartre, Paris, France
BGM: Le temps des cerises by Cora Vauc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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