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Das Brandenburger Tor, Berlin, Deutschland
2017. 2.
런던 빅밴이나 파리 에펠탑 같이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큰 도시에는 랜드마크가 있다. 베를린의 랜드마크라면 단연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으로 알고 있어서 베를린 방문 일정에 브란덴부르크 문을 넣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방문 계획을 세워놓고 보니 이상하게 브란덴부르크문의 이미지가 머리 속에 그려지지 않았다. 왜일까? 브란덴부르크는 통일된 독일연방공화국의 베를린 주변 지방 이름인 동시에 역사적으로는 한때 유럽을 지배한 신성로마제국의 그 지역 제후국 이름이었다. 제후국 브란덴부르크는 17세기 프로이센을 병합하여 프로이센왕국을 세웠으며 세력을 키운 프로이센왕국이 19세기말 독일제국을 일으켰으니 브란덴부르크는 현대 독일이라는 국가의 출발지라 할 수 있는 곳이다. 프로이센을 병합한 것은 브란덴부르크였는데 당시 브란덴부르크는 신성로마제국의 제후국이었고 프로이센은 제국 경계의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독자성을 대외에 강조하기 위해 브란덴부르크 대신 프로이센이라는 이름을 썼다고 한다. 베를린은 제후국 브란덴부르크의, 프로이센왕국의, 독일제국의 수도였고 오늘날 독일연방공화국의 수도이니 브란덴부르크 문이 베를린의 랜드마크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겠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브란덴부르크문의 이미지가 선뜻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즉 내게 브란덴부르크 문은 글로 읽어 알게 된 독일이라는 나라와 그 수도를 대표하는 의미로서의 랜드마크지 사진 정보를 보고 구체적 형태로서 인지하게 된 랜드마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브란덴부르크 문을 가겠다고 계획을 세우고 검색을 해본 다음에야 브란덴부르크 문이 이렇게 생겼구나 했던 것이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프로이센왕국의 흥기와 독일제국의 성립, 제1차세계대전 패전, 히틀러의 나치스 등장, 제2차세계대전 패전, 독일의 분단과 통일의 과정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근대 이후 줄곧 독일의 흥망성쇠와 함께했다. 18세기말 브란덴부르크 문이 들어설 때 이름은 이웃 국가와의 평화 바라는 뜻으로 문의 건설을 명한 프로이센 왕 프레드릭 윌리엄 2세의 의도를 살려 평화의 문이었고 평화의 여신 아이리네(Eirene)가 문의 수호신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영악한 나폴레옹은 브란덴부르크 문의 상징성을 간파했을까? 19세기 초 독일을 포함한 유럽대륙을 석권한 나폴레옹은 브란덴부르크 문으로 그의 군대를 이끌고 가 승전 퍼레이드를 펼쳤으며 문의 꼭대기에 있던 네 필의 군마가 이끄는 전차 조각상을 떼내 파리로 가져가 버렸다. 프로이센으로서는 참으로 치욕적인 사건이었을 텐데 나폴레옹의 천하는 채 10년을 못 갔고 1814년 영국과 프로이센 주도의 연합군에 의해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프로이센은 빼앗긴 브란덴부르크 문의 조각상을 되찾아 와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성대한 승전 군사 퍼레이드를 벌였으며 내친 김에 전차 조각상 마저 고쳐 평화의 여신 아이리네가 아니라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를 전차 조각상 위에 얹었다. 이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 조각상은 나중에 히틀러의 나치스가 즐겨 애용한 프로이센 독수리 문양과 철십자가가 새겨진 창을 손에 쥐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와 독일제국의 몰락, 혼란의 바이마르공화국 시대를 거쳐 히틀러의 나치스가 집권하자 나치스는 브란덴부르크 문을 아예 나치스당의 심볼로 만들어버렸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반성으로 제국주의를 청산한 후 탄생한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은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체계가 잘 잡히고 보통·평등·비례선거를 보장한 민주적인 헌법을 만들었으며 이 민주적인 헌법을 바탕으로 히틀러는 독일 유권자들의 압도적인 지지와 몰표를 얻어 민주적으로 정권을 잡았고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미증유의 재난을 일으켰으며 그 결과로 나라를 분단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민주 그 놈, 물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대전은요?니, 참 나쁜 대통령이니, 엮었다니 하는 유치하고 졸렬한 수준의 어휘를 국민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내뱉는 사람을 보통·평등·비례선거를 통하여 대통령으로 뽑은 사람도 국민이고 그 국민의 신임을 배반했다 하여 대통령 자리에서 내려 앉힌 사람도 그 국민이다. 해괴하게도, 어처구니 없게도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흔들며 거리로 나와 정작 본인 불쌍한 처지는 다 잊고 불쌍해서 뽑아 줬는데 또 불쌍하게 되어서 집회에 나왔다는 노인들은 그렇다 치고 대체 그 민주적인 선거로 이제는 중대한 범죄 피의자가 되어 구치소에 수감 중인 전직 대통령을 뽑아 준 그 수많은, 확 부러뜨려 버리고 싶은 손꾸락들, 그 국민들은 지금 다들 어디서 무슨 말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민주, 그 놈.
제2차세계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끝나고 독일과 수도 베를린의 분단 그리고 냉전의 시대가 열리자 브란덴부르크 문은 독일을 넘어 냉전이라는 세계사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의 경계에 서 있었으며 냉전이 격화되어 1961년 베를린장벽이 쌓이자 브란덴부르크 문은 오늘날 우리의 판문점 역할을 하는, 동서베를린의 통문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1989년 11월 공산주의가 몰락의 조짐을 보이자 베를린 시민들이 베를린장벽을 무너뜨리려고 달려간 곳이 브란덴부르크 문이었다. 평화의 문으로 들어섰다가 나치스의 상징으로 유전을 겪은 브란덴부르크 문은 냉전의 프론트 라인이 되었다가 공산주의의 몰락과 독일 통일의 상징이 된 것이다. 이 상징을 보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심지어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방문 했다니 이 분들은 무엇을 얻고자 먼 베를린까지 날아가 브란덴부르크 문을 방문했을까? 그것이 이 나라 대통령 된 사람으로 이른바 민족의 염원인 통일의 의지를 다지는 당연히 해야 할 퍼포먼스요 쇼잉 업이었다 치자. 대체 그 먼 독일까지 날아가 베를린도 아니고 드레스덴에서 치졸한 통일대박이라는 어휘를 휘갈긴 대통령은 누가 뽑았단 말인가? 그 어처구니 없는 연설문마저 비선실세가 손을 보았다는 것은 이제 삼척동자도 아는 일인데 불과 이틀 전 소위 그 드레스덴 선언 3주년을 맞아 이 나라 통일부 장관이라는 작자는 "北 변화 바탕으로 드레스덴 선언 정책방향 지속 추진해야”라는 말을 지껄였다고 한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에워싼 장벽은 진작에 무너져 내렸고 브란덴부르크 문은 통일된 독일연방공화국의 상징으로 다시 우뚝 섰는데 판문점은 오늘도 불통이다. 통일? 신기하게도 통하니까 사람들을 속이려고 말장난을 치지만 본질적으로 부패한 권력은 오직 사욕을 채우는 것 외 세상 모든 것에 철저히 무관심하다. 부패한 권력을 청산하지 않고서 어떻게 통일을 바란다는 말인가?
지하철 브란덴부르크문역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자 브란덴부르크 문이 한 눈에 들어왔다.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잠시 감개무량했던가? 문 주변에 잘 정돈된 빌딩들이 마치 주랑처럼 에워싸고 있었는데 그 높이가 브란덴부르크 문 높이에 맞춰져 있었다. 내 눈에는 브란덴부르크 문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빌딩의 높이를 억지로 깎아낸 것처럼 보였다. 브란덴부르크 문은 18세기 말 당시 유행이던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에 따라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입구를 본 떠 만들었다 하나 관심이 덜 해 그런지 나로서는 조형적인 측면에서 브란덴부르크 문을 높게 쳐줄 수 없었다. 게다가 두꺼운 먹구름이 온 하늘을 뒤 덮은데다 빗발마저 간간히 흩날려 구경 다니기에, 사진 찍기에 가장 좋지 않은 날씨였다. 하지만 대단한 볼 거리가 있는 줄 알고 그걸 보겠다고 브란덴부르크 문에 간 것도 아니었고 인증샷을 찍으러 간 것도 아니었으므로 브란덴부르크 문을 봤다는 것만으로 의미는 충분했다. 가랑비 흩날리는 으슬으슬한 날씨였으나 그래도 인증샷 한 장 남기지 않을 수 없어 카메라의 타이머를 맞춰놓고 셀카 포즈를 취해보는데 브란덴부르크 문 바로 왼쪽 빌딩에 커다란 성조기가 비스듬히 걸려 비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것이 눈에 들었다. 그렇구나, 광화문 옆 주한미국대사관처럼 주독일미국대사관이 브란덴부르크 문 옆에 붙어 있구나 했다.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비자를 받아야 했던 시절, 광화문을 지나칠 때마다 그 미국비자를 받으려고 주한미국대사관 옆을 긴 줄로 옆을 뺑 에워 싸듯 비자 수속 차례를 하염없이 서서 기다리던 사람들을 보고 언제나 마음이 불편했다. 이 또한 ‘이제는 다 지난 일’이기는 하나 역사는 돌고 돈다 하지 않는가? 트럼프라는 해괴한 작자를 대통령으로 올려 놓았으니 광화문 옆 주한미국대사관에 미국 비자를 받으려고 길게 줄을 서는 마음 짠한 장면을 다시 보게 될 줄 어찌 알겠는가? 제발 그때까지는 주한미국대사관이 이사 갔으면 좋겠다.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살짝 감개무량 해 하며 인증사진 한 장 재빨리 찍고 주독일미국대사관에 걸린 성조기를 보고는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겼다가 브란덴부르크 문을 걸어 지나 다음 행선인 독일제국의회, 라이히슈타크 빌딩으로 걸음을 옮겼다. 주독일미국대사관 맞은 편 빌딩에는 대사관 건물임을 알리는 이탈리아 국기가, 프랑스 국기가 나부끼고 있어 여기가 베를린의 독일의 중심부겠거니 그러니 당연히 옛 서베를린 지역이겠거니 했는데 여행 후 지도를 보니 옛 동베를린 지역이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브란덴부르크 문 주변 빌딩이 현대식 빌딩으로 채워진 이유가 그 때문이었을 테고 독일의 통일 역시 오래된 옛 일이 되어가고 있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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