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뤼네부르크역
Bahnhof Luneburg, Niedersachsen, Deutschland
2017. 2.
영국 살 때 세상 맥주는 다 맛본 듯 하다. 오래 전부터 맥주를 즐겨왔던 데다 맥주 가격이 싸고 종류가 아주 다양할 뿐 더러 특히 오후 세 시가 넘으면 땅거미가 깔리는 겨울 마트 가서 맥주를 궤짝으로 사다 놓고 그 맥주 홀짝홀짝 마시면서 우리 방송 다운로드 받아 보는 낙 그것 이외 달리 그 긴 영국의 겨울 밤을 보낼 방도가 없었다. 나의 영국에서 겨울 밤 보내기가 그러했는데 영국 사람들은 대체 어찌 그 긴 겨울 밤을 보내는가? 내가 살펴 보기로 나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았다. 영국의 가장 인기 있는 프로 축구 잉글리쉬 프리미어 리그는 가을에 시즌을 시작해서 봄에 시즌이 끝난다. 동네 놈상들 다들 펍에 모여 맥주 퍼마시면서 프로 축구 텔레비전 관람하는 그 낙으로 그 긴 영국의 겨울 밤을 보내는 것이다.
영국 맥주하면 에일(ale)이라는 유명한 전통 맥주가 있다. 상온에서 발효 시키고 상온에서 음용 하는 맥주인데 안타깝게도 영국 사람들조차 에일 맥주를 즐겨 찾지 않는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애드넘(Adnam)이라는 상표를 가진 지역 에일 맥주가 유명하긴 했어도 나는 물론이려니와 펍에서 애드넘을 즐기는 영국 사람을 본 적 드물다. 다른 모든 이유를 떠나 차갑지 않은 맥주 맛을 상상하면 왜 사람들이 에일 맥주를 찾지 않는지 간단히 그 답을 찾을 수 있겠다. 내가 아는 유일한 예외는 런던 프라이드(London Pride)라는 상표를 가진 에일 맥주인데 런던에서 팔리는 런던 프라이드는 제법 인기 있는 에일 맥주이다. 아마 맥주 맛보다 상표 값 하는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맥주는 필즈너(Pilsner)로 대표되는 양조 방법으로서는 체코가 원조인 미국식 대량 생산 방법으로 양조된 라거(lager) 맥주가 대세로 어느 나라 어느 상표가 되었든 마트에서 건 술집에서 건 우리가 마시는 맥주의 대부분은 라거 맥주라 보아도 괜찮다.
영국에서 팔리는 그 많은 종류의 맥주 중 가장 싼 맥주는 덴마크 원산 칼스버그(Carlsberg) 맥주다. 우리나라에서는 고급 호텔 바에서나 볼 수 있던 칼스버그 맥주가 가장 싸구려 맥주라니? 해외 여행이 흔하지도 자유롭지도 않던 시절 첫 해외 출장 가서 홍콩 첵랍콕 공항 바에서 마시던 칼스버그 맥주 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는데 그 칼스버그 맥주가 영국에서 싸구려 취급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얼씨구나 싶어 영국에서 한동안 칼스버그 맥주만 줄창 마셨는데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하지 싸서 좋기는 한데 한편으로 내가 싸구려 맥주를 마시나 싶어 칼스버그 맥주를 멀리 하기 시작하더니 언제부터인가 벨기에산 스텔라 맥주를 줄창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왜 칼스버그는 영국에서 싸구려 맥주가 되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았다. 맥주는 대개 알코올 도수 4도에서 5도 사이인데 영국에서 팔리던 칼스버그 맥주는 3.8도 그리고 영국 맥주 값이 그 알코올 도수에 비례한다는 것을 안 것이다. 그래도 한번 떠난 마음 칼스버그에는 좀처럼 손이 가지 않았다.
독일 함부르크 출장 중 짬을 내어 뤼네부르크 구경하고 함부르크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려고 뤼네부르크역에 도착했더니 기차 출발까지 20여분이 남았다. 마침 뤼네부르크 구경에 한참을 걸어 다녀 다리도 아프고 목도 칼칼하니 역 대합실에 딸린 카페에 앉아 시원한 맥주 한 잔 하기 딱 좋은 순간 그때 카페 냉장고에 그 싸구려 칼스버그가 엘리펀트(Elephant)라는 상표를 달고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라벨을 자세히 보니 알코올 도수 무려 7.5도 바로 값을 치르고 테이블에 앉아 벌컥벌컥 맥주를 넘겼더니 광고에 나오는 그 목 넘김이 기막히다는 표현이 이런 때 쓰는 것이겠거니 했다. 원샷까지는 못하고 반샷 정도 맥주를 들이킨 후 테이블에 맥주 캔을 올려 놓고 보니 캔에 그려진 코끼리가 사뭇 술 마시는 나를 닮은 듯 하였다. 술꾼을 우리는 흔히 술고래라 하는데 유럽어에 술꾼을 가리켜 술코끼리라 하는 용례가 따로 있는지 궁금했다.
칼스버그 이야기를 꺼내려고 못 찍은 사진을 이렇게 두고 보니 우연히 두 사람의 얼굴이 함께 담겼다. 사진 올려 미안한 점 있으나 그렇다고 이미지를 편집하여 당신들 목을 댕강 잘라버릴 수도 없지 않은가? 사진 구도로 보나 포커스로 보나 그대들이 내 맥주 사진에 끼여든 것이지 내가 그대들을 찍으려 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 이해 있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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