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지하철 브란데부르크역에 걸린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당시 베를린 시민들 사진
S-Bahnhof Berlin Brandenburger Tor, Berlin, Deutschland

2017. 2.

 

나는 왜 베를린으로 갔을까?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독일은 승전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소련령으로 분할 점령되었고 이후 소련령만 동독으로 남아 이른바 공산화 되었으며 나머지는 자유민주주의 서독으로 남아 라인강의 기적이라 하는 경제 부흥을 이루었다는 스토리를 국민교육을 받은 내 또래 중 모르는 사람은 없다. 수도 베를린은 소련령에 속해 있었으며 공산주의 동베를린과 자유민주주의 서베를린으로 쪼개졌다. 서베를린은 서독의 명목 상 수도였지만 공산주의 동독에 둘러싸인 고립된 섬 같았다. 자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응당 알아야 할 윤리에 대한 교과목 중학교 국민윤리 시간에 독일 분단에 대해 배웠는데 국민윤리를 가르치던 나이든 여자 선생님이 너무 무성의하게 수업에 임했다는 것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그저 그분이 원래 무성의한 분이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당시 국민윤리라는 교과목 자체가 성의를 가지고 가르치기 힘들어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독일이야 전쟁을 일으키고 그 전쟁에서 패했으니 분단이 응보라 치고 전쟁을 일으킨 적 없는 우리의 분단과 독일의 분단이 왜 비교대상이 되는지 그리고 옛 동독이 스스로를 독일민주주의공화국(German Democratic Republic)이라 칭했는데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왜 비교대상이 되는지 우리가 배운 국민윤리에서는 가르치지 않았다. 공산주의와 대비되는 개념은 자본주의일 테고 공산주의가 민주주의를 담보할 수 없었듯 자본주의 역시 민주주의를 담보할 수 없는 것은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바이다. 그래도 궁색하니 민주주의란 말 앞에 자유민주주의라고 붙여 그 시대 아이들에게 국민교육을 시켰을까? 누구를 위한 자유? 요즘도 학교에서 공산주의 대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 같은 것을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안 가르치겠지. 그걸 다시 가르치겠다며 시대착오적인 자들이 그 알량한 권력에 기대 설친 통에 나라를 크게 어지럽힌 최근의 탄핵이라는 사단이 생긴 것일 테고.

베를린이 동서로 나뉘었지만 1961년 베를린 장벽이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전까지 베를린 시민들은 별 제약 없이 동과 서를 왕래했다고 한다. 그 시절 몇몇 유럽지역 한국 교민들이 동베를린에 있던 북한대사관에 드나들며 간첩교육을 받았다 하고 실제 국내에 들어와 간첩활동을 했다는 동백림(東伯林)사건, 곧 동베를린사건이 1967년 당시 중앙정보부 발표로 터졌다. 중앙정보부는 194명이 대남적화공작을 벌였다고 했지만 최종 심리에서 간첩죄가 인정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동과 서의 경계가 뒤섞인 베를린 그 회색지대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된 후 ‘동백림’과 함께 지난 역사의 행간으로 지도에서 사라졌다. 과거 동독의 더 동쪽에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소련의 위성국 폴란드와 체코가 있는데 소련의 주도로 동유럽 국가들이 맺었던 군사동맹 바르샤바동맹의 회원국이었던 폴란드와 체코는 1999년에 바르샤바동맹에 대항하여 서유럽국가가 맺었던 군사동맹 나토(NATO)에 가입했다. 오늘날 체코 프라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 가장 인기 있는 유럽 여행지 중 하나로 떠올랐으며 소련조차 없어진 마당에 모스크바로 여행하기로 했다 하여 무슨 거리낌이 있겠는가? 그러나 누가 베를린으로 가기로 했다 치자.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이미지와 함께 지난 우리 현대사의 음산한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어디 나뿐이겠는가? 내가 베를린에 가보기로 작심한 이유는 베를린의 그 음산한 이미지들이 이제는 의미 없는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고속열차가 베를린 시역에 접어들어 처음 정차한 역은 슈판다우 (Spandau)역이었다. 최종 목적지인 베를린중앙역이 가깝다는 것을 알리는 듯 승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고 있었다. 옆 자리 노신사에게 슈판다우역이 동베를린이었냐 서베를린이었냐 물었더니 ‘서쪽’이라는 짧은 대답에 이어 ‘다행히 이제는 다 지난 일이지만…’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다행히 이제는 다 지난 일 그 시대의 종말을 내 눈으로 확인하러 나는 베를린에 가 보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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