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서퍽 입스위치 워터 프론트 · 펍 아이작
Pub Isaacs and Ipswich Waterfront, Ipswich, Suffolk, UK
2012. 2. 25.
행정 관료로 또 유명한 아홉 권의 『일기』(Diary)를 통하여 17세기 영국 사회 사정을 기술한 귀중한 사료를 남긴 작가로 활동한 사무엘 피브스(Samuel Pepys)는 영국의 선술집 펍(pub)을 가리켜 잉글랜드의 심장(the heart of England)이라 했다. 영국에서 살았던 내 경험으로 첨언하자면 피브스의 표현이 백 번 지당하다 하겠고 잉글랜드뿐 아니라 스코틀랜드에서도 같은 생각을 했으며 가보지 못한 영국 문화권에 속하는 다른 나라에서의 사정 또한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영국 사람들은 술만 마시러 펍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밥 먹으러 펍을 찾으니 사람 사는 게 밥 먹고 술 마시는 것 외 뭐 더 중한 것이 있는가 생각하면 거듭 피브스의 표현이 백 번 지당하다 하겠고 영국 사는 동안 우리 동네 펍의 문지방 내 발바닥 때문에 많이 닳았으리라 짐작한다.
그런데 펍은 왜 펍일까? 이런 의문은 마치 술집을 왜 술집이라 하는가 하는 질문과도 같아서 영국 사는 동안 한 번도 해보지 품어보지 않았다. 그러다 오늘 영국에서 담아온, 내 발바닥으로 문지방이 닳은 펍 사진 한 장을 보고서야 문득 펍은 왜 펍인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사진은 영국 살 때 우리 동네에서 가장 유명했던 아이작(ISAAC)이라는 상호를 가진 펍인데 그 입간판 밑에 프리 하우스(FREEHOUSE)라는 표시가 보이길래 대체 뭔 뜻이냐 싶어 검색했더니 프리 하우스란 특정 양조회사 소유가 아닌 개인 소유의 펍을 뜻하고 즉, 여러 회사 맥주를 판매하는 펍을 뜻하고 프리 하우스는 곧장 펍으로 리다이렉션 되었으며 그 해설을 읽고서야 펍이 퍼블릭 하우스(public house)에서 온 낱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기야 퍼블릭 하우스보다 펍에 더 어울리는 표현이 어디 있으랴. 이 해설을 읽고 언젠가 서울 이태원에 영국식 펍이 있더라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나 내친 김에 이태원에 있다는 그 영국식 펍도 검색해보았는데 블로그에 오른 사진들을 보아 외관은 물론 술, 음식 모두 내가 아는 펍을 꽤나 잘 재현해놓았구나 싶었다. 그러나 굳이 시간을 내어 이태원까지 가보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까닭은 이태원의 펍이 영국식 펍이기는 해도 내가 아는 퍼블릭 하우스, 그 뜻에 맞는 분위기를 가진 펍은 아닐 듯 싶었기 때문이다.
영국 펍에서 파는 음식, 유명한 피쉬 앤 칩스를 포함하여 메뉴 불문 문자 그대로 대접(big plate)에 담긴 고지방, 고단백, 소태, 기름 덩어리 음식을 다시 입에 대고 싶은 생각도 없을뿐더러 찜찜한 맛이라고 표현할 밖에 없는 영국 에일(ale) 맥주를 다시 마시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래도 술꾼이 영국에 살며 담아온 사진들 속에는 펍의 실 내외를 담은 사진이 적지 않고 그 사진들을 볼 때마다 아련히 그 시간들이 그리워지는 까닭은 음식 때문이 아니고, 그 좋아하는 맥주 때문도 아니다. 술 퍼 마시며 프로축구 중계방송을 보러 온 동네 놈상들, 얼굴에 주근깨 자글자글한 동네 아가씨들, 밥 하기 싫어 얘들까지 펍에 몰고 나온 아줌마들, 이웃 꼬부랑 할배 할마시들, 그 속에서 아무 거리낌 없이 고단했던 하루를 털썩 내려놓을 수 있었던 나를 포함한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던 퍼블릭 하우스, 펍이라는 뜻에 딱 맞는 그 분위기 그리고 그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든 그때 참 귀여웠던 내 어린 아들이 만들어 내던 펍의 그 분위기가 그리운 까닭이다.
영국 서퍽 입스위치 워터 프론트 · 펍 아이작
Pub Isaacs and Ipswich Waterfront, Ipswich, Suffolk, UK
2011.6.11. · 2012. 2. 25.
For My Lady by Moody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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