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퐁네프
The Pont Neuf, Paris, France
2013. 5.
『퐁네프의 연인들』(Les amants du pont-neuf)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그만인 우리 시대 우리 세대의 옛 영화다. 파리 센 강(Seine)의 아홉 번째 다리 퐁네프가 배경이고 그 주변을 배회하는 거리의 부랑자 남녀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영화가 나온 1991년 그 해 제대하고 복학했다. 그때는 영화처럼 치열하고 때로 아름다운 사랑을 나도 하리라 믿었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 그러했겠거니 영화 같은 사랑의 기대는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영화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었던 까닭은 내가 꿈꾸던 영화 같은 사랑의 배경으로 결코 가볼 수 없을 것 같던 파리를 센 강을 그 위에 선 유럽풍 돌다리를 세워놓을 수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연인들은 사라지고 퐁네프만 남은 짝이다.
퐁네프의 연인들이라는 영화가 나온 1991년으로부터 세월의 강이 흐르고 흘러 지난 해 봄 파리 센 강 위 아홉 번째 다리 퐁네프에 서 있었다. 프랑스어와는 인연이 없어서 영화처럼 근사한 사랑의 의미를 담고 있을 줄 짐작했던 퐁네프의 뜻이 고작 "New Bridge" 새 다리라는 시시한 이름인줄 그 여행을 준비면서야 알았다. 다리 모양도 유럽의 옛 도시에 흔한 돌 다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름처럼 시시했다. 퐁네프의 다리 위에서 연인도 진즉 사라졌으니 이제 다리마저 잊혀질 것인가 했다. 그런데 그때 찍어온 퐁네프 사진을 보니 『퐁네프의 연인들』 이라는 영화가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생각해보니 내가 『퐁네프의 연인들』 이라는 영화를 오래 기억하는 이유는 연인들 때문도 아니고 파리의 퐁네프 때문도 아니라 영화가 나온 해가 1991년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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