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고속열차 안
On an ICE train from Hambrug to Berlin
2017. 2.
전날 점심 식사를 함께한 독일인 파트너가 나더러 내일 일정이 없다는데 뭐 할거냐 묻기에 베를린 다녀올 거라 했더니 반쯤 농담으로 거기 볼 만한 것이 별로 없을텐데 하였다. 베를린 행 기차가 함부르크 교외를 벗어나자 그의 말처럼 차창 밖에 정말 아무 것도 없었다. 과거 독일이 서쪽과 동쪽으로 분단되어 있을 때 함부르크는 옛 동독 접경과 멀지 않은 곳이었다. 기차가 장벽도 철조망도 없어진 옛 분단의 경계선을 아무도 모르게 넘어간 후 차창 밖에는 건물도 사람도 심지어 차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저 끝없이 이어지는 평야와 농지와 초지를 가르는 키 큰 나무들이 서 있는 숲과 드문드문 소택지의 연속이었고 아주 가끔 방송 화면을 통해 봤던 사회주의식 건물, 합리성을 가장한 획일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장방형 옛 건물들이 고속열차 옆을 획획 스치듯 지나갈 뿐이었다.
하지만 그 심드렁한 풍경 속 그 너른 평야는 불모의 땅이 아니다. 베를린 가는 고속열차 차창 밖 풍경은 옛 프로이센 땅의 풍경이다. 일찍이 국가적 통합을 이룬 이웃 유럽 강대국들에 비해 독일은 중세 이후 오랜 기간 강대국들에 의해 점령되고 간섭 받는 작은 나라들로 분열되어 있었다. 독일의 국가적인 통합은 1871년 독일제국을 선포함으로써 이루어졌고 그 핵심 역할을 한 것이 프로이센 왕국이었으며 독일제국의 황제는 프로이센 왕의 차지였고 제국의 수상은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였으며 당연히 제국의 수도는 프로이센 왕국의 수도였던 베를린이었다. 그러니 함부르크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고속열차는 역사적으로 프로이센의 부란덴부르크 지방, 독일제국의 심장을 가로질러 달리는 것이다. 언젠가 유럽 근대사를 다룬 책에서 오늘날 독일 지역을 차지한 세력이 유럽 패권을 쥐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인간의 역사는 재물에 대한 탐욕의 역사이고 패권을 쥐려는 목적도 재물에 대한 탐욕 때문이다. 지리적으로 서유럽 대평원지대 중심에 위치한 프로이센과 독일제국의 옛 땅, 그 끝없이 펼쳐지는 농지와 초지에서 나오는 농업생산력 그것이 패권을 노리는 본질적 목적이었을 것이며 한편 그것이 프로이센의 흥기와 독일제국 성립의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그 힘으로 일어나 더 큰 패권을 쥐겠다고 20세기 두 차례나 세계대전의 참화를 일으킨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 끝에 제국의 심장부를 사회주의 소비에트연방에게 내주고 말았으며 그곳은 1945년부터 1989년 독일민주공화국 동독의 붕괴까지 블뢰머씨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이 농지와 초지 상태로 남았으며 그로부터 다시 28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아무것도 없이 남아 있었다. 다시끝도 없이 이어지는 독일의 평야를 차창 너머로 바라보면서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이어져있던 경의선은 세월의 흐름을 무려 십여 년이나 물리고 서울에서 출발 이름처럼 웃기게 겨우 도라산역에서 빽도가 되어 버린 채 일산과 서울을 오가는 통근열차 선로가 되어버렸는데 도라산역 너머 북쪽 풍경은 어떤 모습일까 문득 궁금했다. 그 사이 함부르크에서 출발한 고속열차는 베를린 시내에 접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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