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글루아 다리 │ 빈센트 반 고흐 │ 1888년 │ 독일 쾰른 발라츠-리하르츠미술관
Le Pont Langlois à Arles, Vincent van Gogh, mai 1888, Musée Wallraf Richartz
오랫 동안 우리 집 거실에 걸린 고흐의 작품 액자가 있다. 고흐가 프랑스 남부 아를에서 작품활동을 하는 동안 그곳의 「랑글루아 다리」(Les ponts de Langlois)를 담은 작품이다. 랑글루아의 다리는 배가 지나 다닐 수 있도록 교각 상판을 양쪽으로 들어 올릴 수 있는 도개교(drawbridge)인데 수로가 발달한 서유럽 평원 지역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네덜란드는 잘 알려진 대로 도로망만큼 운하가 발달해서 내가 본 네덜란드 어느 곳에든 도개교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1887년 서른 네 살의 고흐는 파리 생활을 접고 지중해와 가까운 프랑스 남부 아를로 가서 지친 심신을 달래며 작품 활동에 전념하게 되는데 다음 해까지 약 15개월 동안 아를에 머물며 무려 200점이 넘는 유화 작품을 남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고흐의 걸작들 대부분이 아를 시절에 그려진 것이고 그 시절 걸작 중에 「랑글루아 다리」가 있다. 고흐는 랑글루아 다리를 여러 차례 그렸는데 우리 집 거실에 걸린 작품은 다리 아래 아낙네들이 빨래를 하는 풍경을 담은 수채화이며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고흐미술관과 독일 쾰른의 발라츠-리하르츠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유화 작품이 유명한데 이 발라츠-리하르츠미술관 소장 작품이 최근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展』 전시목록에 포함되어 지난 주말 전시회에서 이 작품 봤다.
많은 사람들이 불운한 예술가의 아이콘으로 고흐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고흐는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았고 모국어인 네덜란드어뿐 아니라 영어와 프랑스어에도 능통했다. 안정적인 수입과 편안한 미래를 보장하는 미술작품 중개인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고흐는 그러나 마음 속에 들끓는 직업과 종교, 사랑과 예술에 대한 격정을 통제할 수 없었고 화랑을 그만 둔 뒤에는 전도사가 되겠다고 유럽 각지를 헤매고 다녔으며 이마저 실패하자 나이 서른이 넘어 직업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남들이 보기에 좌충우돌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삶의 궤적을 따라 그는 고국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벨기에로 다시 네덜란드로, 프랑스로 유럽 각처를 전전했으며 파리를 떠나 아를에 머물면서 그 모든 격정을 온통 작품 활동에 쏟아 부었던 것 같다.
고흐가 프랑스 아를에 머물며 랑글루아의 다리에 꽂혀버린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부평초 같은 삶을 이어오며 고향 네덜란드로부터 멀고도 먼 프랑스 남부까지 밀려 내려와 그곳에서 우연히 고향에서는 너무 흔한 그래서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도개교를 발견한 때문은 아니었을까? 파리 생활 중 당대 인상파 화가들과 교유하며 받은 영향과 단순하고 강렬한 형태의 외곽선과 채색을 특징으로 하는 일본 판화의 영향을 받아 고흐의 아를 시절 작품들 대부분은 그 형태가 그림 밖으로 뛰쳐 나올 듯 두드러지고 색상이 화사하다 못해 눈부시기까지 하다. 「랑글루아 다리」 역시 이러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데 한편 이 강렬하고 눈부신 작품을 보며 애잔함을 느끼고 마는 까닭은 결국 스스로 부른 것이기는 하나 고된 삶을 살다간 천재 화가의 수구지심(首丘之心)이 담긴 작품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 한다. 양산을 받쳐 들고 홀로 다리를 건너가는 여인의 실루엣은 이 작품을 그릴 때 고흐의 심상 그 자체였으리라.
워낙 유명한 작품인데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고흐의 작품이 서울을 찾았으니 전시회를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코가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살펴본 「랑글루아 다리」 왼쪽에 구름을 표현하려다 생긴 고흐의 실수였던지 아니면 미처 마감이 덜된 채 작품을 마무리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던지 옅은 하늘색 유화 덩어리가 뭉개져 있었는데 마치 캔버스 위에 색을 칠할 때 붓을 쥔 고흐의 손목 스냅이 느껴지는 듯 했다. 주말 오후라는 시간은 확실히 미술 작품 전시를 관람하기에 적절한 시간은 아니라서 뒤 관람객에게 떠밀려 억지로 전시장을 빠져 나온 기분인데도 화집이나 화면을 통해 작품을 감상하는 것보다 그 북새통에서라도 전시회에서 진품을 접하고 싶은 이유가 바로 이런데 있을 것이다. 전시의 간판 격인 고흐의 작품 외에도 『풍경으로 보는 인상주의展』에서는 비록 대작이라 할 수 없어도 그 시대 서유럽 미술을 이끈 마네, 모네, 르누아르, 세잔, 로트렉, 모르조 등 그야말로 기라성 같은 화가들의 수준작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기회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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