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잔 "생트 빅투아르산" 베낀 그림
2018. 11.
after Paul Cézanne "Mont Sainte-Victoire" 1885~1895
미술과 친구 되는 '미친 블로그'를 운영하는 분이 프랑스 화가 폴 세잔(paul cezanne)의 작품을 소개하는 글을 올려서 읽어보니 "폴 세잔이 없이는 현대 미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폴 세잔은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 불립니다."라고 쓰고 "모든 20세기 현대미술의 거장들이 그를 아버지로 모시"며 서양화가라는 글쓴이 스스로 폴 세잔의 아들로 자칭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이 분 20세기 현대 미술의 거장과 같은 반열에 스스로를 셀프로 올렸으니 그의 작품을 본 적은 없으나 그 호연지기만은 대단하다 싶었다. 다만 현대 미술의 아버지가 계시고 그 아들들은 이토록 거창한데 대체 현대 미술의 어머니는 어디 계신단 말인가? 궁금했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만개한 인상주의 또는 인상파 미술이 전 시대 서유럽 미술과 차별되는 부분 중 하나는 회화를 표현함에 있어 색채의 해체 또는 재구성이라 할 것이다. 세잔은 이 인상주의 미술을 자양분으로 색채뿐 아니라 형태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시도를 시작한 사람이고 그래서 그를 피카소, 마티스 등 기라성 같은 화가들이 포진한 다음 세대 큐비즘, 포비즘, 심볼리즘이니 하는 이른바 현대미술의 아버지로 부르는 것일 게다. 그러나 이건 없는 것 빼곤 다 있는 혹은 있는 것 빼곤 다 없는 네이버 지식백과 또는 이를 차용한 블로그의 소개일 따름이고, 확실히 세잔의 작품 속에는 그 이전 시대 그리고 그 이후 시대 작품을 연결하는 고리 같은 것이 보인다.
세잔의 걸작에는 유명한 사과 알맹이들 말고도 그의 고향, 지중해와 가까운 프랑스 남부 엑상 프로방스(Aix-en-Provence)에 있는 생트 빅투아르산(Mont Sainte-Victoire)을 그린 일련의 풍경화가 있다. 세잔은 고향의 성산을 두고 여러 차례 여러 각도에서 풍경화를 그리며 풍경의 색채와 형태를 재구성했다. 세잔은 기하학(geometry)을 적용하여 풍경을 구성하고 독특한 색상으로 객체의 깊이를 표현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 잘 몰라도 세잔이 그린 일련의 생트 빅투아르산 풍경화를 한 자리에 모아두고 작품이 완성된 연대순으로 배열해보면 작품 속에 당시에는 재미없고 인기 없던 그러나 이제와 현대 회화의 아버지가 된 거장이 현대 회화의 길을 향해 걸어간 묵직한 발자취를 발견할 수 있다.
크레파스로 대가의 명작들을 베껴 그리는데 재미를 붙였기로 현대 회화의 아버지, 세잔의 생트 빅투아르산 정도는 한번 그려 조야 하지 않겠는가 하여 스케치 북을 들었다. 처음에는 런던 코톨드 갤러리에서 보고 사진으로 담아온 1887년 작을 베껴 그릴까 하다 눈앞에 소나무 한 그루가 왠지 거슬려 1885년 작을 그렸다. 단지 모니터 화면 속의 작품을 스케치 북으로 옮겨 그리는 작업인데 그리는 내내 원작을 그리는데 세잔의 공력이 엄청나게 들어간 작품이구나 하는 생각, 내 이러려고 그림 베껴 그리나 자괴감까지는 아니고, 베껴 그릴 작품 잘못 골랐다는 후회가 들었다. 그래도 퇴근 후 조금씩 색칠을 입혀가며 일주일 만에 마무리한 내 모작은, 물론 원작의 덕이겠거니, 역시 꽤 마음에 든다.
아들의 크레파스 때문에 시작된 대가의 그림 베껴 그리기는 문교 오일 파스텔이 가세하고 프리즈마 유성 색연필까지 가세하였으며 비록 보정을 위한 덧칠 정도이기는 하지만 아크릴 물감까지 가세했다. 내 비록 고수가 연장 탓하는 법 봤냐 하는 주장을 내세우나 호미가 필요한데 낫을 쓸 수 없지 않느냐며 문교 오일 파스텔로는 안되겠다, 파버 카스텔이니 까렌다쉬니 하는 메이커 제품들을 계속 알아 보고 있는 중인데 아니라면서도 못 그린 그림을 앞에 두고 결국 계속 연장 탓만 하고 있는 짝이니 고수의 연장 탓 운운 한 것이 그저 계면쩍어질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