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왕산 개심사

충남 서산 상왕산 개심사

韓國 忠淸南道 瑞山市 象王山 開心寺

Gaesimsa Buddhist Temple, Sangwangsan mt., Seosan-si, Chungcheongnam-do, Korea

2008. 10. 19.

배경음악: 강은일 「비에 젖은 해금」


 

신문 보다가 우연히 개심사(開心寺)라는 절 이름을 보게 되었는데 그 개심이라는 이름에 꽂혀버렸다. 개심사를 가본다 한들 내 마음이 열리겠냐만 개심사 언저리에 발 길 닿는 것만으로도 개심(改心)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있었던지 모르겠다.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어서 개심사를 찾아가는 도로변 서산 들판에는 알곡이 영글고 먼 산은 단풍에 붉었다. 그 개심사를 품고 있는 충남 서산 산들은 낮은 완곡이고 들은 기름져 보였으며 사위는 조용하기 이를 데 없어서 서해안고속도로 해미IC를 빠져 나와 개심사에 이르는 647번 지방도로는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소개되어도 손색이 없겠다 싶었다. 게다가 647번 지방도로는 얕은 구릉을 깨끗이 밀어버린 자리에 드넓은 초지를 관통하여 지나게 되는데 이런 풍경은 달력 그림으로나 쳐다본 유럽의 초지와 닮아 있어 각별했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살펴본 바로는 농협중앙회 한우개량사업소가 조성한 초지라는 것이다. 자의반 타의반의 정객으로 권력과 야합하며 그렇게 자기반 타의반으로 평생을 살아온 김종필씨가 조성한 초지를 1980년대 전두환 일당의 신군부가 강제로 빼앗다시피 국유화하여 현재는 농협중앙회의 한우개량사업소로 쓰인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씁쓸한 이야기도 올라 있다. 초지를 둘러싼 사람들이 덧없는 설왕설래가 있기 전부터 개심사는 그 자리에 있었을 테고 그 초지를 지나 가뭄으로 야윈 속내를 드러내고야 만 저수지를 둘러지나 개심사 입구 주차장에 차를 대었다.

 

가을 단풍이 절정인 때 전국 명산의 유명 사찰 주변 사정을 익히 짐작하고 있었던 터라 넓지 않은 개심사 주차장에서 오히려 여유 있는 주차 공간을 차지하자 싱거운 느낌이 들어버린 왜일까? 그것은 여유롭고 넉넉하다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마치 내 것이 아닌 듯 불편한 느낌이 드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내가 사는 꼴이 늘 퍽퍽한 게다. 게다가 주차장 근처에 옹기종기 모인 음식점에 앞에 기대어 이름 그대로의 촌로(村老)와 촌부(村夫)와 촌부(村婦) 몇몇이 길가에 자리를 잡고 칡이며 말린 취나물이며 탱자 따위를 팔기 위해 좌판을 벌여 놓은 모습 또한 생경했다. 그래서 내가 찾아가는 절이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소개된 아름다운 절 그 개심사가 정말 맞는 것인지, 내가 제대로 찾아오기나 한 것인지 의심이 들기까지 했던 것이다. 하지만 충남 서산에 또 다른 개심사가 있을 리 없었고 네비 따라 찾아온 것이니 그렇게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 상점가를 지나 이백 여 미터를 걸어 상왕산개심사(象王山開心寺)라는 우람한 현판이 부끄럽지 않은 큰 일주문(一柱門)을 만났다. 맨 땅 위에 콘크리트를 치고 그 기단 위에 올라서 있는 일주문은 내가 찾아본 어느 대 가람의 일주문 못지않은 규모였지만 최근 지어진 건축물이라는 인상을 숨기지 못했고 그 때문에 일주문 주위를 이루는 풍경과 동떨어져 있어서 이것이 과연 아름답다는 개심사의 일주문이 맞나 싶기까지 했다.

 

허우대 멀쩡한 일주문을 지나 다시 숲길을 제법 걸어 가파른 돌 계단 앞에서 서있는 입석 두 개를 만났는데 한쪽에는 세심동(洗心洞)이라는 음각이, 다른 한쪽에는 개심사 입구라는 음각이 새겨져 있었다. 사찰의 일주문이란 사찰 금당(金堂)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통과해야 하는 문이라 하는데 부처의 눈에 사물의 껍데기가 무슨 소용있겠냐만 그런 의미에서 개심사의 일주문은 돌계단 앞에 서 있는 조그만 입석 두 개가 일주문으로 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냐 싶었다. 세심동 입석을 지나 솔밭 사이로 난 제법 가파른 돌계단을 십 여분쯤 올라가야 개심사의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다. 누군가는 일주문을 지나 개심사에 이르는 그 숲길에 빽빽이 들어 찬 아름드리 노송이 장관이라 하던데 지금 그 노송들의 대부분은 솔잎혹파리떼의 공격으로 결딴이 나버려 도무지 살아남기 힘들어 보이는 것들은 병충해의 확산을 막기 위해 베어져 그루터기만 보기 흉하게 남았고 그나마 방제가 가능한 것들은 아름드리 둥치가 안쓰러워 보이게도 링거병을 꽂고 있었다. 솔잎혹파리떼의 공격은 개심한 불심도 막아 내지 못했던 것일까? 하긴 사람의 눈으로 잘 보이지도 않는 벌레인 솔잎혹파리떼도 생명이겠거니 고귀한 생명을 바라보는 불심에 아름드리 노송과 솔잎혹파리와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 

 

불교에 대해 아는 게 없어 절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모르고 게다가 개심사를 찾아가면서도 흔한 인터넷 정보조차 뒤져 보는 않은 탓으로 개심사 대웅보전(大雄寶殿)이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아 국가보물로 지정되어 있다는 것조차 나중에 알게 되었으니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절 이곳 저 곳을 둘러볼 수 있어 오히려 좋았다. 숲길을 제법 더 걸어가면 홀연히 나타나는 개심사 본 모습은 그 갑작스러운 등장이 전혀 놀랍지 않을 만큼 첫 인상이 소박했다.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어찌 보면 무질서하게 배치된 듯 한 전(殿)과 각(閣)들은 서로 처마를 맞대고 들어서있을 만치 좁게 자리 잡고 있었다. 개심사로 발길을 들여놓는 맨 앞자리에는 경지(鏡池)라는 이름을 가진 조그만 연못이 있는데 그 연못 한 가운데에 딱 한 사람만 건너갈 수 있는 외나무다리가 걸려 있었다. 그 다리는 이승과 피안(彼岸) 사이에 가로놓인 다리일까? 외나무다리 위에서 연못을 내려다보니 내 마음은 안보이고 늙은 배롱나무 가지만 담겨 있었다. 그 배롱나무 가지의 모양이 내 마음과 닮은 듯싶어 또한번 연못을 내려다보니 거기에는 파란 가을 하늘이 담겨 있고 그 가을 하늘 위에 수북이 떨어진 낙엽이 담겨 있고 한 철 제 삶을 다해가는 수초가 낙엽 위를 떠 다녔다. 외나무다리 위에서 고개를 드니 가파른 계단 위로 해탈문(解脫門)이 서 있어 마침내 득도라도 한 양 해탈문 앞에 섰다. 하지만 해탈문 앞에 서서 내가 본 것은 '가족건강'과 '대박기원'이라는 속세의 염원을 담은 시주 기와장이 쌓여 있는 모습뿐, 개심사를 찾은 내 눈에는 개심도 안보이고 해탈도 안보이고 국보로 지정된 대웅보전도 보이지 않으며 그저 나무석가모니불을 반복해서 읊조리는 구성진 독경 소리와 그 독경 소리에 맞추어 수능을 앞둔 자녀를 위해 백팔 배를 올리는 모심만 보였다. 그리고 내 눈에는 대웅보전에 앉아 중생을 내려다보시는 천년 묵을 묵으셨다는 목불(木佛), 석가모니불은 안보이고 대웅보전의 뒤 뜰 석축 위에 소담스럽게 피어난 소국(小菊) 무리만 보이고 대웅보전을 둘러싼 무량수각(無量壽閣) 마루에 걸터앉아 아직 이도 돋지 않은 어린 아이에게 이유식을 떠먹이는 젊은 부부의 모습만 보였다.

 

대웅보전의 오른편에는 대웅보전의 단청이 무색하게도 벽에 회칠을 한 이조 사대부 풍의 가옥이 대웅전만한 크기로 버티고 서 있었는데 사료로 큰 가치가 있는 이조 성종 때의 건물 심검당(尋劍堂)이라 한다. 그러나 내 눈에는 심검당의 사료적 가치보다 그 심검당이 잘 보이는 대숲 사이 언덕에 앉아 이젤을 세워놓고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중생이 보였다. 보물 대웅보전과 심검당을 등지고 절 우측으로 돌아 나오면 근년에 날림으로 지어 올린 듯한 슬라브 양옥도 보이고 일본식 건물이 분명한 목조 건물도 보이고 시멘트 철골로 지어낸 볼품없는 종각이 보이고 1975년이라고 세운 날짜를 시멘트 반죽 위에 또렷이 새겨 넣은 돌집이 보인다. 그래서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절 다섯 개 중에 하나가 개심사라는 말이 다 허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드는 사이, 탐스럽게 결심을 맺은 감나무 가지가 가을바람에 싸르락 싸르락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의심을 품고 개심사를 떠나 주차장으로 돌아내려오는 길은 차들이 절을 향해 출입할 수 있도록 산 옆으로 낸 제법 너른 길이었다. 그 너른 길 양 옆으로 솔잎혹파리떼에 진이 빠져 잎 끝이 새카맣게 타 들어가는 소나무 숲이 그래도 울창했고 소나무들이 그렇게 결딴이 나가는 사이에도 가을바람에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고, 울창한 줄기를 뻗은 망개가 붉게 타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답을 얻지 못해도 살아지는 것처럼 개심사가 아름다운 절이건 아름답지 않은 절이건 개심사는 천 년 전부터 그 자리에 서 있었고 내가 다녀갔든 다녀가지 않았든 앞으로도 그 자리에 서있을 것이니 그 소박한 절 집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내가 가타부타 남기는 몇 마디는 무슨 소용일까? 애초 내가 개심(開心)은커녕 개심(改心)도 아니 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이름에 꽂혀 개심사를 찾은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개심사를 떠나며 떠오른 것은 옛 조사가 큰 절 집을 두고 남겼다는 한 마디, “허우대는 좋으나 그 안에 부처가 없소”라는 말, 허우대 빈약한 개심사에는, 내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겠지만 부처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은 품어도 될 듯싶기도 했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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