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홍콩 출장을 갔는데 나를 초대한 거래 회사의 접대성 호의로 출장일정을 마치고 홍콩의 핫 스팟들을 찍는 짧은 유람을 했다. 가이드까지 딸린 유람 중에 좋은 구경하고 맛난 음식 먹고 단 술 실컷 마시고 난 후 가이드가 다음 일정으로 소개한 장소는 쇼핑몰이라 했는데 막상 차에서 내려보니 기분이 꽤 으스스해지는 거대한 창고 건물 앞이었고 상자들이 즐비하게 쌓인 어둡고 좁은 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자 그제야 천정이 높고 조명이 환한 매장 건물이 드러났다. 그곳은 이른바 짝퉁 명품을 파는 곳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소위 명품을 가지고 싶다는 욕구가 덜하고 더구나 그 욕구를 짝퉁으로 채우겠다는 생각은 없는데 하나만 팔아주십사, 당시 짝퉁 매장으로 안내한 가이드의 애절한 눈길, - 관광을 하는 동안 그렇게 내게 살갑게 굴던 목적이 바로 이거였구나 싶어 내심 찜찜하기는 했어도 – 그 눈길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어서 딱 체면치레만 할 생각으로 시계 매대를 얼핏 둘러보니 롤렉스니 오메가니 까르띠에니 하는 상표가 붙은 짝퉁 시계들이 눈에 들었는데 하나 같이 내 취향이 아니라 이걸 사 줘 말아 고민하던 차 잘 알지도 못하는 상표의 손목 시계 하나가 눈에 들길래 가격을 물어보니 이 십 만원이 채 되지 않아 눈 딱 감는 심정으로 그 시계를 사고 말았다. 당시 가이드 말로는 스위스 본사에 납품할 진품 시계인데 화투 패 밑 장 빼듯 납품업자가 빼돌린, 진품과 마찬가지인 시계라고 하던데 속으로 이 무슨 개구라인가 싶었지만, 시계는 마치 손목에 차지 않은 듯 가볍기 짝이 없고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는 단순한 디자인이라 퍽 마음에 들어서 귀국 이후에도 계속 홍콩에서 산 브랜드도 모르는 짝퉁 시계를 차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은근히 그 시계 어디서 샀냐, 진품이냐 묻길래 위와 같은 사연으로 이 시계를 차게 되었다고 대답했더니 내 시계의 진품 상품명이 바쉐론 콘스탄틴(Vacheron Constantin)이고 꽤 고가의 시계라는 것을 알려줬다. 그제야 인터넷으로 검색해봤더니 내가 차고 있는 짝퉁 시계의 진품 가격이 나로서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고가의 시계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튼 진품이 명품이건, 그 가격이 엄청나건 홍콩에서 산 내 짝퉁 시계는 그 사이 내가 가져본 어떤 시계보다 정확하고 고장 없으며 잔 기스 없이 십 여 년이 흐른 오늘도 내 손목을 지키고 있는데 짝퉁 시계로 뜬금없는 잡문을 포스팅 하는 이유는 나와 같은, 이 나라 금융위원장이 찬 짝퉁 시계 때문에 불거진 정치권과 언론의 설왕설래가 참 가관이다 싶어서이다. 금융위원장이 명품 시계를 차고 있다고 마치 특종 다루듯 기사를 내놓은, 보수라 하기에도 아까운 수구 조차 못 되는 이른바 언론사의 기사를 가장한 패악질이야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알고 보면 10년 전 캄보디아에서 산 짝퉁 시계라는 이 나라 금융위원장의 해명도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고, 관세는 제대로 물었냐는 공직자 재산신고는 했냐 묻는 보수 야당을 칭하는 자들의 수준이라는 것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상황이며, 여기에 숟가락을 얹어 금융위원장이 짝퉁 산업을 장려하는 꼴이라는 민주평화당의 일침에는 그야말로 웃을 일이 아닌데 웃지 않을 수 없어 보는 이도 별로 없는 이 블로그에 이어 얽힌 웃픈 감정이나 풀어놓자 싶어 남기는 잡문이다. 세상 돌아가는 꼴이 거성 박명수의 ‘짝퉁시계 탈랄라’ 같은 짝인데 노래나 들으며 웃어야지 어쩌겠는가?
이에 얽힌 동아일보의 “단독” 기사는 아래 링크를 참조.
http://news.donga.com/3/all/20181113/92845108/1
박명수
"deep in the night"
탈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