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가요무대 1420회 가요세상만사 19
2015년 6월 1일

 

 

며칠 전 정말 오랜만에 노래방에 가서 일행들의 채근에 억지춘향 격으로 부른 노래가 머리카락을 심었다는 – 이 잡문을 쓰려고 나무위키를 검색해보았더니 이제는 가발이라는 – 본명 이영춘, 예명 설운도의 「너만을 사랑했다」라는 곡이다. 대학 다닐 때 딱히 가깝지는 않았으나 별 볼 일없는 청춘들이 끼리끼리 모이듯 함께 어울려 다니던 친구들 중 본명 종태(鍾泰), 이상하게도 종태보다는 종대라는 이름이 입에 촥 감겨서 늘 종대라고 불렀던 친구가 있었는데 어느 날, ‘야 내보고 종대라 카지마라, 내 종태 아이가 종태!’라고 볼멘 소리로 항의하던 그 종대가 함께 어울려 쏘야를 안주로 물에 술을 탄 것인지, 술에 물을 탄 것인지 알 수 없는 싸구려 호프에서 이러나 저러나 간에 물배를 채우고 2차로 노래방에 가면 즐겨 부르던 노래가 설운도의 「너만을 사랑했다」인데 언제부터인가 나도 노래방에서 그 노래를 간혹 부르곤 했던 것이다. 그것은 아마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생업의 고단함을 몸으로 겪어 내며, 그래도 외쳐보고 싶은 한 마디, ‘약칸 모습은 보이기 씰타, 혼자가 될 지라도’ 그 노래가사가 그렇게도 내 맘에 와 닿았던 까닭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 그렇다. 약한 모습은 보이기 싫었다, 혼자가 될 지라도.

사실 종대의 「너만을 사랑했다」는 가수 김현식이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고 그의 유작이 된 「내 사랑 내 곁에」가 공전의 히트를 치던 내 제대와 복학이 맞닿아 있던 당시만 하더라도 대학생이 노래방에서 부르기에는 뜨악한 면이 없지 않았다. 그 착한 종대는 파월장병으로 고엽제 피해자인 그 부친의 음덕으로 보훈자녀가 되어 졸업 후 교정직 공무원이 되었다는 뜬 구름 같은 소문을 들었는데 며칠 전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종대는 여전히 설운도의 노래를 애창하며 그도 나처럼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을까 문득 궁금했다. 요즘 기분이 꿀꿀한 퇴근 길에는 가요 폴더 아래에 있는 나는 뽕짝으로 알고 있고, 트로트라고 하는 사람도 많으며 공식적으로는 전통가요 폴더의 곡들을 듣는다. 김지애을 차진 목소리, 문주란의 퇴폐적인 허스키, 그리고 손대면 토옥 하고 터질 것만 같은 현철의 노래 외에도 은근 중독성을 자랑하는 설운도의 노래도 빠질 수 없다. 오늘 퇴근 길에 설운도의 「나침반」이라는 노래를 듣다 휴대폰 메모장 남겨 놓은 잡문을 옮겨 놓는 중인데, 을지로도 아닌 얼찌로 길 모퉁이에서 내가 찾는 그 사람을 찾아 연신내로 갈까, 문정동으로 갈까 고민할 수도 있겠는데 왜 설운도는 미아리로, 영등포로, 차라리 청량리로 갈까 고민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객쩍은 이야기는 이제 접는 게 좋겠고, 잡문을 마무리 하려다 가만 생각해보니 현철도 그렇고 설운도도 그렇고, 이들에게 큰 영감을 준 ‘불후의 나훈아’도 그렇고, 부산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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