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1.

2012. 5.22

런던 그리니치 쾌속 범선 커티 삭

Cutty Sark and Cutty Sark Gardens, Greenwich, London, UK

커티 삭(Cutty Sark)은 1869년 스코틀랜드에서 건조된 쾌속 범선(Cliper)이다. 범선으로 한때 최단 시간 항해 기록을 세운 대단한 선박이기는 했지만 당시는 이미 원양 항해선으로 범선 대신 증기 동력선이 활약하기 시작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커티 삭은 원향 항해 범선으로 거의 최후에 건조된 배라고 할 수 있겠다. 공교롭게도 커티 삭이 건조된 1869년은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가 개통된 해이기도 하다. 바람의 힘으로 돛을 밀어 항해하는 범선은 상대적으로 바람이 약하고 불규칙한 지중해나 홍해와 같은 내해에서는 그 성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이를테면 유럽에서 아시아 대륙으로 항해하기 위한 중간 지점은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이고 유럽에서 희망봉까지의 단거리는 아프리카의 해안선을 따라 항해를 하는 것일 텐데 실제 범선들은 북반구에서는 남미 브라질 쪽을 바라보고 항해를 하다가 적도 근처 브라질에서 방향을 꺾어 다시 반대 방향으로 희망봉을 바라보며 남반구의 대서양을 항해 했다. 이는 지구의 자전 방향을 따라 부는 대양의 무역풍과 해류를 이용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즉 대양을 항해하는 범선들은 무역풍이라고 하는 대양의 강하고 규칙적인 바람이 불어주어야만 넓고도 넓은 바다를 항해하여 대륙과 대륙 사이를 오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수에즈 운하의 개통은 범선의 시대가 저물고 바람의 방향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증기 동력선의 시대가 왔음을 알리는 상징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이 시대의 변화의 맨 끝자리에 건조되었던 불운했던 커티 삭이 원양 항해선으로 생존하기는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것이다. 애초 커티 삭은 아시아와 영국 사이에 식민지 수탈 무역에 투입되기 위해 건조되었는데 실제 커티 삭이 이 노선에 투입되어 항해한 것은 건조 이후 고작 여덟 차례에 불과했다. 아시아와 영국 사이의 무역선은 이미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여 항해 시간이 훨씬 짧았던 증기 동력선이 재빨리 대체해버렸던 것이다. 이후 커티 삭은 포르투칼로 다시 미국으로 팔리는 배로 시대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가 1922년에 영국의 퇴역 선장이었던 윌프레드 도먼(Wilfred Dowman)이라는 사람의 눈에 들어 다시 영국으로 되돌아 왔다. 이후 커티 삭은 선원들의 실습선으로 이용되다가 1938년에 테임스해양대학(Thames Nautical Training College)에 이전되어 교육실습선으로 이용되었으며 1954년에 항해를 중단하고 테임즈해양대학이 위치해있던 테임스 강변 그리니치에 영구 전시되게 되었다. 2007년에는 보수 작업 중에 화재가 발생해서 거의 홀딱 타버리다시피 했는데 한때 세상에서 가장 빠른 배였던 커티 삭에 대한 영국 사람들의 사랑은 끔찍해서 그 복원에 엄청난 성금이 답지한 결과 5년간의 철저한 복원 작업을 거쳐 2012년 4월 25일 그리니치 공원에서 다시 방문객을 맞을 수 있게 되었다.

 

술 즐기는 분들은 다들 커티 삭을 유명한 스카치 위스키(Scotch Whisky) 상표로 기억하겠는데 위스키 커티 삭은 범선 커티 삭이 영국으로 돌아온 1922년 그 다음에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Glasgow)의 양조회사에 출시한 브랜디드 스카치 위스키의 브랜드 네임인 것이 맞다. 양조회사는 애초 커티 삭이 건조된 조선소와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어 범선 커티 삭의 인기에 편승한 매우 재빠르고 기막힌 상술이 발휘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처음 그리니치 공원을 찾았을 때는 작년 이른 봄이었는데 그때는 화재 후 보수공사가 한창이라 공사를 위한 비계와 커튼에 가려 커티 삭의 모습을 제대로 구별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올 봄 다시 찾은 그리니치에서는 제대로 그 모습을 되찾은 커티 삭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다만 리깅(Rigging)이라고 하는 범선의 밧줄 연결 모습이 완전하지는 않은 것 같아 완전한 제 모습을 찾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그리니치(Greenwich)는 유명한 그리니치천문대가 위치한 곳이기는 하지만 짧은 일정으로 런던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인 곳이 아닌듯하고 실제 그리니치공원을 빼고는 그다지 볼 것이 없는 서민적인 동네이기는 하지만 나는 그리니치를 꽤 좋아해서 영국 살이 중에 여러 차례 그리니치에 다녀왔다. 런던 서남쪽 뉴 몰든과는 아무 인연이 없어 영국 살이 중에 잃는 것도 많겠지만 한편으로 그렇기 때문에 런던 동쪽에 내 동선이 몰려 있어 그리니치의 아름다움, 정겨움, 하여튼 정체가 분명하지는 않지만 런던 동쪽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또 어쩌면 거기 커티 삭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지난 역사의 행간에 쓰인 이야기들이 어쩌니 저쩌니 해도 대양을 항해하는 범선의 자태는 많은 남자들의 로망에 다름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런던 그리니치 쾌속 범선 커티삭

Thames Clipper and Cutty Sark, Greenwich, London, UK

2012. 5. 22 / 2012. 7. 1.

 

 

BGM

CHRISTOPHER CROSS's SAILING

Cover

Hindley Street Country Club

'○ 영국 이야기 > 런던 스트리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런던에서 봄  (0) 2019.03.05
카나리 워프 풍경  (0) 2019.01.10
런던 딕  (0) 2019.01.07
오래된 시장  (0) 2019.01.04
킹스 헤드  (0) 2018.11.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