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옥

2016. 10.

일요일 오전 광화문 교보문고 갔다가 책 구경하고 나니 배가 고파근처 청진옥에 갔다. 가게 광고에 의하면 종로1가 피맛골에서 – 2016년 기준 - 79년을 이어온 해장국집이라 한다. 종로1가의 피맛골은 재개발 바람에 높이 수십 층의 빌딩이 들어섰는데 나는 서울 사람이 아니라서 재개발 전 피맛골의 모습이 어땠는지 모른다. 오히려 지인의 소개로 청진옥을 처음 찾았을 때는 과거의 장식들을 소구 삼아 초현대식 빌딩 1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번에는 혼자 청진옥을 찾았는데 입구 옛 미다지 문을 흉내 낸 문을 드르륵 밀고 안에 들어서니 종업원은 대뜸 손가락으로 위층을 가리켜서 1층에 뻔히 빈자리를 보면서 도리 없이 2층으로 걸음을 옮겼다.

2층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나처럼 혼자 2인용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은 한 사람의 등이 보였다. 그렇게 5분이 흐르고 10분이 흘렀는데 종업원은 물병 하나 테이블에 올려놓지 않았다. 급기야 등을 보인 사람은 벌떡 일어나 종업원을 큰 소리로 불러 고함을 질러대는데 그분 등에 눈이 달렸는지 종업원에게 불만을 쏟아내며 뒤에 앉은 사람까지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다며 나를 언급하는 통에 내가 다 좌불안석이었다. 등에 눈 달린 손님의 거센 항의가 통했는지 얼마 후 내 앞에 양선지해장국 한 그릇과 서울 장수막걸리 한 병이 놓였다. 등에 눈이 달린 손님은 함께 나온 깍두기를 사발 채 해장국에 들이 붓고 다시 벌떡 일어나 종업원을 붙잡고 "우거지 추가"가 왜 안 되냐며 또 한바탕 소란이었다.

해장국은 입천장에 화상을 입을 만큼 뜨겁게 내야하고 그 열기를 음미하며 국을 휘저으며 식혀서 입에 담으면 얼얼한 맛이 입 전체에 퍼져야 내가 아는 해장국인데 청진옥 해장국은 미지근하고 종잡을 수 없는 ‘맛없는 맛’이 났다. 이런 맛을 음식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슴슴한 맛이라고 하는 것일까? 슴슴하게 양선지해장국에 막걸리 한 병을 비운 후 식대 지불하고 청진옥을 문을 나섰는데 입구에 장사진이라는 말이 이런 말이겠거니 싶을 만큼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런데 장사진은 그 사람들 입맛이니 그렇다 치고 내가 대체 무엇에 이끌려 종로1가 피맛골 79년 전통의 청진옥을 찾았던 것일까? 이제 나도 서울 사람인척 하나 아무래도 내 입 맛은 서울의 맛에 적응하지는 못하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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