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 source: Fever Tree

 

진(gin)은 알코올 도수가 40도 정도되는 증류주로 17세기 네덜란드 사람들이 처음 만들어 마셨다. 증류 기술의 부족으로 처음에는 마시기 거북할 정도로 냄새가 지독했다 하는데 당시 대학교수 한 분이 증류기술을 개발, 이 냄새를 제거하자 금새 대중주 확산되었다 한다. 오늘날 술 이름 꽤나 들어본 사람에게 진하면 런던 드라이 진(London Dry Gin)이겠는데 네덜란드 술이 영국을 대표하는 술로 거듭난 사연도 이색적이다. 17세기말 영국에서는 국왕과 의회가 서로 지지고 볶는 충돌이 격심했는데 이 충돌의 와중에 네덜란드의 통치자였던 오렌지(Willem III van Oranje)공(公)이 아내인 영국 공주 메리(Mary Stuart, Princess Royal)를 등에 업고 영국왕 윌리엄 3세(William III of Orange)가 되어 버렸다. 교과서에서 영국의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이라 가르치는 사건이다. 영국왕이 된 윌리엄 3세는 고향 네덜란드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분이셨던지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수입이 되던 와인과 이 와인을 증류한 브랜디(brandy)에 고율의 세금을 때려버려 진이 영국 내에서 싼 값에 유통되도록 조장했다. 이에 가난한 사람까지도 진을 마시고 취해 왕이 된 기분을 만끽하게 되었으니 영국왕 윌리엄 3세는 참 대단한 일을 하셨던 것이다. 이후 영국에서도 광범위하게 진(gin)이 제조되어 세계적인 히트 상품 런던 드라이 진이 탄생한 것이다. 술이란 것이 원료가 되는 곡물이나 과실의 산지에 따라, 양조 방법에 따라, 증류방법에 따라 또 첨가물에 따라 그 종류가 가지각색이고 진 역시 크게는 게네비르(genever)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오리지날 네덜란드 진과 영국의 진으로 대별되며 그 밖에도 오렌지 껍떼기, 시나몬 등 각종 잡다구리한 향미료를 얹은 많은 종류의 진이 생산되고 있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진은 양조 알코올을 끓여낸 증류주에 주로 독특한 향과 맛을 내는 쥬니퍼 베리(Juniper berry)라는 나무열매 향신료를 첨가해서 재차 증류해낸 술을 말하는 것이다. ‘주니퍼’라는 상표로 국내에서 시판되는 런던 드라이 진을 스트레이트로 한잔 마셔보면 이 술이 흡사 알코올 도수 40도짜리 쏘주가 아닐까 싶은 바로 그 향과 맛을 느낄 수가 있으니 이 잡문을 읽고 괜한 호기심이 발동한 술꾼이 계시다면 그 호기심을 자제해주시기 바란다. 런던 드라이 진, 좋게 말해서 대중주, 까놓고 표현하자면 싸구려 술의 전형이다.

 

이른바 15세기부터 대항해 시대 혹은 지리상의 발견이라는 사기성 짙은 말로 포장된 유럽인들의 아메리카 대륙, 아프리카 대륙 그리고 남아시아에 대한 악랄한 침략이 시작된 이래 이들 유럽인들을 크게 괴롭힌 열대지방의 풍토병이 말라리아였다. 침략을 통해 소위 신대륙 열대지방에 이주해간 많은 유럽인들이 모기가 옮기는 말라리아에 걸려 목숨을 잃었는데 19세기까지 열대 말라리아에 듣는 예방약이나 특효약이 없어 말라리아에 걸리면 속수무책으로 목숨을 잃기 쉬웠던 것이다. 다만 남미 원산인 키나나무 수피(樹皮)가 생약의 형태로 말라리아에 듣는 치료약으로 사용되었는데 남미 잉카족이 키나나무 수피의 효능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이 역시 유럽인들이 원주민들에게서 배워 알게 된 치료법이었을 것이다. 키나나무 수피에는 퀴닌(quinine) 혹은 말라리아 치료제로 보통 명사화된 키니네(kinine)라는 성분이 있어 말라리아 치료에 도움이 되었던 것인데 19세기 초 유럽인들이 화학적으로 이 퀴닌 성분을 분해 정제하는데 성공함으로써 본격적인 말라리아 치료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이에 약삭빠른 네덜란드 사람들이 약제로 쓰일 키나나무를 그들의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 자바섬에서 대량으로 재배했다고 한다. 문제는 흰색 분말 성상의 이 퀴닌이 무척 쓴 고약한 맛을 지녔다는 것이다. 하긴 쓰지 않다면 그게 약일까만은. 아무튼 19세기 인도 대륙에 쳐들어가 온갖 분탕질을 일삼던 영국 군대는 병사들의 말라리아 예방과 치료로 퀴닌을 지급했는데 하도 먹기에 곤란한 쓴 맛이라 물에 퀴닌을 타고 여기에 싸구려 술인 진(gin)을 가미하여 음용하게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오늘날 칵테일의 대명사 진 토닉(gin & tonic)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전쟁터의 병사들에게 왠 술이냐 싶겠지만 제1차 세계대전까지만 하더라도 군대의 주요 보급품으로 술이 빠질 수가 없었다고 하니 병사들이야 ‘올타쿠나’하며 진 토닉을 마셔대었을 것인데 이렇게 약용으로 탄생한 진토닉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음용 되는 칵테일의 대명사로 성장하게 된 이유는 퀴닌의 쓴 맛과 진의 주니퍼 베리의 향미가 어우러져 진 토닉 특유의 깔끔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술꾼이 어찌 술의 종류을 가릴까 만은 다른 술꾼들과 마찬가지로 내 경우도 맥주나 와인 등 완성된 형태의 술을 즐기지 칵테일은 심히 꺼리는 바이다. 우선은 칵테일에 빠질 수 없는 단맛을 즐기지 않을뿐더러 청량음료 같은 칵테일을 두꺼비 똥파리 삼키듯 낼름 낼름 삼키다가는 술값도 술값이려니와 도무지 성분을 알 수 없는 온갖 잡다구리한 것들이 뱃속에 들어가 일으키는 소화작용 끝에 발생하는 작렬하는 숙취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꼭 칵테일을 마셔야 하는 상황이라면 주저 없이 진토닉을 선택한다. 토닉 워터가 말라리아 예방약으로서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오늘날에도 진 토닉용 토닉 워터에는 미량의 퀴닌이 여전히 첨가되고 있는데 학교 다닐 때 과학 실험실에서 맡아 보았던 공업용 메틸 알코올 같은 고약한 냄새가 나는 싸구려 진이 이 토닉 워터와 어울려 멋진 칵테일인 진 토닉이 완성된다는 것이 재미있다. 특히 싸구려 진에 토닉워터, 라임 한 조각 정도면 충분한 만들기 쉬운 칵테일인 탓에 비행기 기내에서 진 토닉이 서비스되는 경우가 흔한데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 구겨 박힌 육신이 장시간 비행을 견디려면 잠이라도 한 숨 자야 할 것이니 이때야말로 진 토닉이 가장 필요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비행기 기내에서는 술이 더 빨리 취한다. 각설하고, “술과 장미의 나날”이라는 제목이 너무도 멋지구리한, 그러나 영양가는 전혀 없는 잡서(雜書)를 읽다가 머리에 떠오른 "잡자(雜子)의 잡문(雜文)"에 이만 마침표를 박고자 하는 바이다. 

Laura Fy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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