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비록 말석이나 주당 회합자리에 내 자리 하나 마련했다 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내가 어찌 즐기는 술의 종류를 가리겠느냐 만은 그래도 좋아하는 술 한 종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맥주를 꼽겠다. 『유럽맥주견문록』이라는 아주 재미있는, 근래 보기 드문 양서를 읽다가 머리에 떠오르는 맥주와 술에 관한 생각을 몇 자 잡설로 풀어 놓고자 한다.

2.

맥주는 기원전 5,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이 처음 만들어 마신 것으로 되어있지만 맥주를 대중화하고 발전시킨 사람들은 유럽 사람들, 특히 유럽대륙에 북동 방향으로 사선을 그어 놓을 때 걸치게 되는 나라 사람들 곧 아일랜드,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독일 그리고 체코 지역 사람들이었다. 이들 나라들을 보다 북쪽에 위치한 나라들은 위스키와 보드카로 대표되는 독주로 유명한 지역이며 반면 이들 나라보다 남쪽에 위치한 나라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지역은 포도주로 유명한 지역이다. 이렇게 맥주가 중부 유럽의 여러 나라를 대표하는 음료로 자리잡은 이유는 이들 지역이 맥주의 주 원료가 되는 보리를 재배하기에 적합한 지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맥주는 쓰인 원료에 따라, 양조 방법에 따라 매우 다르고 독특한 맛을 내는 술이다. 상세는 추천도서 『유럽맥주견문록』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3.

한영 사전을 뒤져 보면 막걸리를 라이스 와인(rice wine)이라고 번역해 놓아 많은 사람들이 막걸리를 라이스 와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매우 잘못된 번역이다. 막걸리를 전혀 모르는 영어 사용자가 들을 때 막걸리를 라이스 와인이라고 해야 막걸리의 실제 성상에 가깝게 이해할까, 아니면 라이스 비어(rice beer)라고 해야 막걸리의 실제 성상에 가깝게 이해할까? 막걸리와 맥주는 그 양조 과정이 매우 유사하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쌀과 보리, 즉 곡물을 주원료로 하는 곡주라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포주도야 말로 과일을 발효시켜 만든 대표적 과실주이니 그 근본부터가 다르다. 그러니 막걸리는 라이스 비어(rice beer)라고 번역해야 맞다.

4.

공중파 방송에서 막걸리의 우수성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다. 이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막걸리를 찾고 있고 우리의 소원은 늘 통일인지라 쏘주 이외 일절 다른 술을 취급하지 않던 주변 대중음식점들의 주문 목록에 막걸리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는 바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지는 않았지만 막걸리는 곡주의 대표주자로 발효과정을 통하여 사람 몸에 이로운 여러 유산균이 생성되므로 이왕 마셔야 하는 술이라면 막걸리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던 바였고 더러 막걸리를 마신다. 다만, 막걸리를 마실 때 몇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이 있는데 이 주의사항이 방송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었는지 알 수 없어 여기에 몇 자 첨언을 달고자 한다. 먼저 막걸리는 제품 라벨이 붙은 병입된 막걸리를 마시는 것이 좋다. 막걸리는 병입 이후에도 발효가 계속되는데 곡물이 적당히 발효되면 술이 되지만 술의 발효가 지나치면 독이 된다는 것, 과학이 증명하는 바이니 절대 무시하면 안되겠다. 예를들어 우리의 명품, 서울 장수 막걸리의 유통기한은 냉장 보관을 전제로 10일 밖에 되지 않는데 내 경험으로는 유통기한을 넘긴 막걸리는 마시지 않는 편이 좋다. 하물며 뚝배기 같은 용기에 담겨 나오는 소위 ‘동동주’의 경우 그 제조일자가 언제인지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음은 물론 술 맛을 돋구기 위해 알 수 없는 첨가물을 탄다 한들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게 되니 거듭 막걸리를 즐기시는 분들, 막걸리는 병입 상태 및 제조일자를 반드시 확인하고 드시기 바란다. 막걸리 하면 골 때리는 숙취를 먼저 연상하시는 분들,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조은 우리으 막걸리가 무슨 죄란 말인가?

5.

우리가 흔히 생(生)맥주라고 부르는 맥주는 영어로 드레프트(draft)라고 하는데 원래는 보리를 발효시켜 만든 맥주에 여과 및 열처리 과정을 거쳐 발효를 멈추게 하는 과정, 즉 살균과정을 거치지 않은 맥주를 의미하고, 이는 제조 이후에도 발효가 지속되는 막걸리와 같은 상태의 맥주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짜 생맥주의 유통기한은 짧을 수 밖에 없어 양조장이 가까운 지역에서 맛볼 수 있는 맥주이다. 반면 우리나라와 특히 일본에서 판매되는 생맥주는 열 처리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은 맞지만 여과 등의 방법을 통하여 발효를 멈추게 한 맥주이므로 엄밀하게 말하면 공갈 생맥주라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우리 나라의 경우 이 생(生)자의 의미를 확실히 다지기 위해 생수를 더러 혼입하는 경우도 있지, 아마? 이 방면에서는 일본 사람들도 뒤지지 않아 살균 처리 후 병입한 혹은 캔입한 맥주에 버젓이 “生”이라는 라벨을 붙여 잘 팔아 먹고 있다. 죄송하지만 그 맥주 안에 들어있는 살아있는 효모(yeast) 다 죽었다. 막걸리도 마찬가지거니와 맥주 역시 갓 양조된 상태의 것이 가장 맛있고 특히 살균 처리 전의 맥주가 가장 맛있다. 그러나 전술한 바와 같이 살균 처리를 하지 않는 경우 우리가 흔히 쉰다고 표현하는 바, 발효가 계속되어 술이 상하기 때문에, 곧 유통기한이 매우 짧기 때문에 경제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딜레마가 있다. 맥주의 경우, 이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부 유럽인의 알코올 음료가 오늘날 명실공히 세계인의 알코올 음료가 된 것이다. 막걸리, 참 좋은 우리으 술이고, 세계에 내놓아 부끄럽지 않은 명주이나 그것이 경제적인 성과로 연결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는 지난 맥주의 역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명백해 보인다. 참, 유통기한이 긴, 살균 처리한 막걸리가 캔에 담겨 나오고 있다는 것, 알고 있는데 그 맛을 이미 섭렵해본 주당 말석에 앉은 1인의 변, 참 메롱한 맛이었다는 점 밝힌다.

6.

오늘날 맥주 하면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나라는 독일이다. 이렇게 독일이 맥주의 대명사로 자리매김 하게 된 이유는 맥주순수령(Reinheitsgebot) 때문이라는 것이 백과사전이 전하는 바이다. 맥주의 원료는 몰트라고 하는 발아 시킨 보리, 맥주의 쓴 맛과 향을 위해, 또 천연방부 효과를 위해 첨가하는 향신료 홉, 그리고 물이다. 맥주순수령은 독일의 빌헬름 4세가 1516년 맥주의 품질 향상을 위해 보리 · 홉 · 물 3가지 원료 외에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정한 법령을 말한다. 당시 맥주가 대중주로 인기를 끌자 사람들이 온갖 잡다구리한 재료를 넣어 맥주를 팔기 시작해서 건전한 맥주 유통질서를 교란시켰던 모양이다. 이에 독일 황제께서 준엄한 법령을 세워 독일 맥주의 맛을 지키기 위해 맥주순수령을 공포했다는 것이다. 원래 규칙 같은 것 정하면 잘 지키기로 유명한 사람들이 독일 사람 아닌가? 세월이 흘러 법이 사문화된 이후에도 맥주순수령은 독일에서 잘 지켜져서 오늘날 독일 맥주가 맛나기로 소문이 났다는 것이다. 양조 원료로 몰트와 홉은 상대적으로 비싼 원료이다. 이래서 양조업자들은 비교적 싼 재료를 찾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옥수수인데 주변에 맥주 꽤나 마신다는 분들은 국내에서 생산, 판매되는 몇 종류의 맥주 맛에 대해 ‘이거나 그거나’ 혹은 ‘그저 그런’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바이다. 반면 국내 맥주 제조사들은 우리 맥주의 품질이 이미 세계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내가 알기로 세계 수준의 국내 맥주 제조사들은 아직까지 자사 맥주의 정확한 성분 및 함량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 않다. 그 사이 수입맥주들이 급속도로 국내시장 점유율을 확대한 이유가 다 외제라면 꺼뻑 죽는 소비자의 잘못된 의식 탓일까? 사람의 입맛이라는 것, 간사하다 싶을 만큼 정직하다는 것 역시 나의 그릇된 또는 올바른 믿음이다.

7.

아마 이 잡문을 읽고 있는 분들 중 우리나라의 음주문화에 대해 한 마디씩 거들고 싶으신 분들 적지 않을 것이다. 기름기 좔좔 흐르는 구운 고기를 생마늘 얹고, 파채 얹고, 막장 듬뿍 찍어 바른 다음 상추로 쌈을 싸서 입이 미어 터지도록, 종국에는 배가 터지도록 먹고 간간히 캬 소리가 절로 나는 소주를 곁들여 마시는 것이 소위 1차 풍경이다. 이때 역시 고기에는 소주가 최고라는 누군가의 추임새가 빠져서는 안되겠다. 뿐만 아니라 맥주는 입가심이 필요한 2차의 필수 코스다. 이미 소주에 취해, 생마늘과 파채, 깻잎의 강렬한 향과 맛에 마비된 미각은 피쳐에 담겨 나오는 쌩맥주에 물을 타든 코를 풀든 가려낼 능력을 상실한 상태가 되고 만다. 사태는 대개 여기에서 수습되지 않는다. 다들 단란하게 살고 싶어 하는 세상이라 단란하게 3차로 자리를 옮기게 되는데 과식에, 맥주에 올챙이처럼 부풀어 오른 배를 안고 엉금엉금 기어가듯 찾아가는 3차 술집에서 발렌타인이 좋으니, 조니워커가 좋으니, 씨바스 리갈이 좋으니 서로가 벌이는 설전은 3차 자리에서 꼭 필요한 추임새이다. 더욱 가관인 상황은 여기서 10년산이 좋으니 20년산이 최고라느니 년식을 따지는 상황에 까지 이르면 그때까지 먹은 소주도, 맥주도, 구운 고기도, 마늘도, 파채도, 심지어 간장에 탄 겨자마저도 초월하여 양주의 상표를 가리고, 심지어 연식까지 따지는 사람들의 “초절정 미각 신공”에 감탄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한다. 맥주는 액체 빵이라고도 한다. 배부르게 마시는 맥주는 한끼의 식사 대용으로도 넉넉한 영양을 제공한다. 배가 터지도록 밥을 먹고 여기에 입가심으로 맥주를 마시는 것은 그러므로 빵을 먹고 또 빵을 먹는 것과 같다. 맥주를 마시면 배가 나온다 또는 맥주를 무슨 맛으로 마시냐는 볼멘 소리는 다 이에서 나오는 소리인 듯싶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좋아하는 맥주에 대한 예의가 아닌듯하여 삼가 하고 싶으나 어쩌랴 이 한 세상, 나도 단란하게 어울려 살아야 하는 1인에 지나지 않는 것을. 다만, 거듭 1차도, 2차도, 3차도 밤을 새워 이 세상 끝까지 기꺼이, 단란하게 따라 나설 용의가 있다만 거기에서 맥주는 빼줬으면 좋겠다.

8.

대체로 주변 사람들에게 맥주를 권하면 이른바 똥배가 나온다는 이유로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듯하다. 나는 사람들이 무슨 근거로 맥주와 똥배의 인과관계를 연상하는지 잘 알지 못하겠다. 술이 사람의 똥배와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은 술 자체의 높은 칼로리 함량 때문이다. 그러므로 같은 용량을 가정할 때 알코올 도수가 높을수록 칼로리가 높다. 아울러 알코올 도수가 높을수록 안주 없이 술을 마시기 어렵기 때문에 술로 인해 살이 찐다면 독주를 즐겨 마실수록 살이 찌게 마련이지 맥주와 같이 알코올 도수가 낮은 술 때문에 살이 찌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겠다. 나아가 맥주를 자주 마시게 될 때 맞게 되는 번거로움, 즉 화장실을 자주 찾게 되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겠는데 맛나게 맥주를 마시고 덤으로 시원한 배뇨의 쾌감을 얻는다고 생각하자면 꼭 단점이라고 볼 수 없고 맥주가 이뇨를 돕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그러므로 이 잡문을 읽으시는 분들, 특히 여성 제위께서는 맥주를 가까이 해주시면 더욱 좋겠다. 나도 와인 대신에 이토록 즐겨 마지않는 맥주로 작업주를 바꿔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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