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 │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 │1601년 │ 런던 내셔널갤러리

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 The Supper at Emmaus · National Gallery London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사흘이 지난 날 세 명의 여인이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찾아갔다. 무덤에 예수의 시신이 보이지 않았다. 여인들은 돌아가 예수의 열 한 제자와 여러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 소식을 들은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삼십 리 떨어진 마을 엠마오로 걸어 가며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그때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가가 나란히 함께 걸으셨으나 두 사람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함께 길을 걸으며 예수께서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느냐 묻기에 그들은 예수의 고난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 그리고 사흘 뒤 세 여인이 예수께서 묻히신 무덤으로 찾아갔으나 시신이 사라지고 없었다는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이야기를 들은 예수께서는 두 사람에게 어리석다 하시며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자들의 예언서에 나타난 예수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들이 찾아가던 동네에 거의 다다랐을 때 예수께서 더 멀리 가시는 듯 하자 그들은 예수께 날이 저물었으니 함께 묵기를 청하였다. 예수께서 이들과 함께 묵으려고 집에 들어선 다음 저녁 식탁에 앉아 빵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 주셨는데 그제야 두 사람은 예수를 알아보았다." 「루가의 복음서 24장」

미켈란젤로(Michelangelo)라는 이름은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에서 매우 흔한 이름이었던 것 같다. 시스티나 성당에 「천지창조」라는 걸작 프레스코화를 남긴 사람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Michelangelo Buonarroti)다. 또 한 사람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을 가진 위대한 르네상스 화가가 있는데 본명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 소년 시절 살던 도시의 이름을 따 카라바조(Caravaggio)로 불린 사람이다. 체계적으로 미술을 배우지 않았으나 천부적인 재능으로 대가 반열에 올랐을 뿐 아니라 카라바지스티(Caravaggisti)라 해서 그의 스타일을 추종하는 후대 화가들까지 생겨나 유럽 미술사에 끼친 영향이 지대했다. 주로 교회 주문으로 종교화를 그렸는데 그 표현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교회는 이를 불경스럽다고 여겨 주문을 취소한 적도 있었다. 카라바조는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을 강하게 대비시켜 빛을 효과를 극대화하여 보는 사람들에게 강렬한 설득력을 주는 키아르스쿠로(chiaroscuro) 기법에 특히 능했는데 그 대표작 중 하나가 런던 내셔널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이다.

나는 이 작품이 유럽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화면 가운데 예수로 표현된 인물의 볼에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고 그 인상마저 천박한 느낌이 들어 어느 모로 보더라도 고난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사흘 만에 부활하신 예수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성서에 나오는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는 카라바조 이전에도, 또 이후에도 종교화가들이 자주 그렸던 중요한 테마이고 렘브란트가 그린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가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렘브란트의 작품을 보면 다른 부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예수의 고난과 성스러움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카라바조는 대체 왜 예수의 모습을 이렇게도 세속적인 모습으로 표현해 놓았을까?

며칠 전 책을 읽다 그 실마리를 발견한 순간 탄식이 나왔다. 엠마오로 향하던 두 사람이 동행하는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까닭을 루가의 복음서에는 그들의 눈이 멀어서 그랬다 했는데 눈 먼 사람들이 엠마오까지 먼 길을 걸어갈 수 있을 리 없고 예수께서 다른 모습으로 그들 앞에 나타나셨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은가? 만약 예수께서 렘브란트의 작품에서처럼 나타나셨다면 누가 부활하신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겠는가? 엠마오로 가던 두 사람은 저녁 식사를 위해 식탁에 앉아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빵을 떼어 나누어 주는 예수의 행동을 보고서야 예수를 알아 보았다. 후대에 표현된 성화 속 예수의 모습은 화가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다. 봐서 그럴 듯 하지 않으면 믿지 않는, 엠마오로 향하는 길에 예수께서 두 사람에게 어리석다고 말씀하신 그 진의를, 예수 부활의 참 뜻을 카라바조의 작품 「엠마오의 저녁 식사」보다 더 잘 표현한 작품이 없겠다는 생각을 그제야 하게 된 것이다. 신앙에 대한 믿음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 우리 눈에 다르게 보일지라도 우리 마음에 있는 것이라는 점을 일깨우는, 런던 내셔널갤러리가 소장하고 있는 걸작이다.

(*) 위 카라바조 작품 「엠마오의 저녁 식사」 왼쪽에 서 있는 인물은 카바라조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식 카메오 출연이다.

 

 

렘브란트  │ 엠마오에서의 저녁 식사  │ 1648 년  │  파리 루브르박물관

Rembrandt, The Supper at Emmaus, Musee du Louvre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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