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 첫걸음, 1856~1858년경, 미국 미시시피 로렌로저스미술관

Jean-Francois Millet, First Step, c. 1856-1858, Lauren Rogers Museum of Art

고흐, 첫걸음(밀레 모사작), 1890년경,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Vincent van Gogh, First Steps (after Millet), c. 1890,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집안에서 이제 첫 걸음을 떼려고 애를 쓰는 아이를 발견한 엄마는 너무 기뻐 아이를 안고 아빠가 봄볕 아래 구슬땀을 흘리며 밭을 일구고 있는 집 옆 텃밭으로 달려갔다. 세상에 태어나 이제 스스로 두 발로 버티고 서서 첫걸음을 떼려고 용을 쓰는 아이 뒤에서 어머니가 아이의 겨드랑이를 받치고 있고 아빠는 손에 쥔 삽을 던져 버린 채 팔을 한껏 벌려 아이를 응원하고 있다. 그 사이 봄볕이 아빠가 뒤집어 놓은 텃밭 흙을 태우고 그 흙으로부터 아지랑이가 타 올라 집 앞 나무들을 타고 하늘로 치솟고 있다.

타오르는 고흐(Vincent van Gogh)의 붓질은 세상을 향해 첫걸음을 떼는 아이의 기운이며 이 아이를 에워싼 부부의 사랑의 기운이며 봄의 기운이며 화가 고흐가 원했던 소박한 삶에 대한 간절함의 기운이다. 고흐는 2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뛰어난 작품을 베껴 그리는 것은 그림을 배우기 위한 필수 코스였고 또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을 분석하고 테크닉을 익히기 위해 혹은 존경심을 표시하기 위해 기성 화가가 된 후에도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을 베껴 그리는 일은 흔했다.

고흐는 밀레(Jean Francois Millet)의 작품을 좋아했고 밀레의 작품을 베껴 그린 작품을 제법 남겼다. 「첫걸음」은 고흐가 서른일곱 살에 자살로 허망하게 삶을 접어버린 그 해 밀레의 작품을 베껴 그린 그림이다. 달리 설명이 덧붙지 않아도 고흐의 필선임이 분명한 이 그림을 볼 때 마다 마음이 짠해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따사로운 봄볕이 쏟아지는 날 밀레의 그림을 베껴 그린 고흐의 작품을 감상하며 이 그림은 어찌되었건 다른 누구의 그림도 아닌 고흐의 그림이라는 생각을 한다.

'○ 아트 로그 > 작품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담담한 물빛  (0) 2024.09.26
인왕제색도  (0) 2024.06.12
베르메르의 시대  (0) 2023.08.08
화성장대에서  (0) 2023.06.21
플랫포드 밀  (0) 2022.10.0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