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컨스터블, 플랫포드 수차 제분소(화물선이 다니는 강 풍경), 영국 테이트 브리튼
John Constable, Flatford Mill(Scene on a Navigable River), 1816, Tate Britain
영국 화가 컨스터블(John Constable)은 1776년 영국 잉글랜드 남동부 서퍽(Suffolk)지방의 작은 마을 이스트 버골트(East Bergholt)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옥수수를 취급하던 부유한 곡물거래상인이었고 그 지방에서 난 곡물을 스투어강(River Stour) 수계를 이용 런던까지 실어 나르던 선박과 수차로 돌리는 제분소를 소유했다. 존 컨스터블은 차남이었지만 장남이 장애가 있었던 탓에 가업을 이어받을 것으로 집안의 기대를 받았다. 고향에서 학교를 마치고 잠시 부친과 같이 옥수수 곡물사업을 했지만 곧 그만두고 화가의 길을 걷는다. 스물 셋이던 1799년 존 컨스터블은 부친을 설득하여 얼마간의 경제적 지원을 얻어낸 후 영국 왕립미술원(Royal Academy Schools)에 견습화가 자격으로 입학한다. 여기서 존 커스터블은 직업 화가로서 필요한 기본기를 익혔을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병행하여 주관이 뚜렷한 예술가로서의 자질을 연마하게 된다. 1802년 존 컨스터블은 군사학교의 드로잉 교사자리를 거절하고 풍경화가로 남을 것을 결심한다. 이후 생계를 위해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고 꽤 훌륭한 작품을 남기기도 했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종교화 역시 관심 없는 영역일 따름이었다. 그림을 사줄 부자들의 초상화와 부유한 교회가 원하는 종교화를 외면했다는 것은 당시 직업화가로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1806년 영국에서 자연경관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호수지방(Lake District)을 두 달 간 여행 했지만 풍경 그 자체는 그에게 의미가 없었다. 그는 사람과 교감하는 풍경이 필요했다. 그의 풍경에는 자연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마을과 교회, 농가와 오두막집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 그가 나고 자란 서퍽과 에식스(Essex)지방이 경계를 이루는 스투어강 일대의 데덤계곡(Dedham Vale)보다 더 좋은 곳은 없었다.
1809년부터 존 컨스터블은 같은 마을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던 마리아 엘리자베스 비크넬(Maria Elizabeth Bicknell)과 교제를 시작했다. 마리아의 부친은 영국 왕가와 해군성을 위해 일하던 법조인이었고 조부는 저명한 영국 국교회 교구 주교였다. 마리아의 조부는 존 컨스터블 집안의 사회적 지위가 낮다는 이유로 두 사람의 교제와 결혼을 심하게 반대했고 결혼한다면 유산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다. 유산을 포기한 마리아는 경제적 기반 없이 이루어지는 결혼이 혹여 존 컨스터블이 화가로서 활동하는데 장애가 될까 걱정스러웠다. 1816년 양친이 사망하자 존 컨스터블은 양친으로부터 오 분의 일에 해당하는 재산을 상속받았고 그해 두 사람은 결혼했다. 결혼한 해인 1816년부터 존 컨스터블은 그때까지 화가로서 쌓아온 수련의 결과와 회화에 대한 이상을 실현할 스스로 육 피트(6 foot) 시리즈라고 부른 가로 180cm 크기의 고향 풍경을 담은 대작들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 첫 작품이 「플랫포드의 수차 제분소」(Flatford Mill)였다. 그림 전면에는 스투어강을 거슬러 올라온 두 척의 화물운반 바지선과 바지선을 예인하는 말을 배치했다. 존 컨스터블의 고향인 영국 남동부 지방은 초지와 농지가 풍부한 대표적인 농업지역이다. 바지선들은 이 지방 농작물을 운반하는 화물선들이었으리라. 강 상류에는 그림에는 나타나지 않는 플랫포드의 아치형 목조다리가 있었는데 바지선이 이 다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예인 하는 말과 연결된 로프를 풀어내야 했고 그림은 그 순간을 포착한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보아온 존 컨스터블에게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었으리라. 그림 뒤로 작품의 제목이 된 스투어강의 수문과 물살을 이용한 플랫포드의 수차 제분소를 그렸는데 이 제분소는 존 컨스터블 부친 소유였고 부친 사후에 그의 동생이 이 제분소를 상속받았다.
오늘날 존 컨스터블이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대접 받는 데에는 무엇보다 풍경화를 회화의 한 영역으로 확고히 자리 잡게 한데 있다. 그 이전까지 유럽회화에 있어 풍경은 초상화의 배경이거나 신화 혹은 성경, 역사적 사건이 주역이 되고 풍경은 그 배경일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존 컨스터블의 풍경화는 그때까지의 전통적인 방식 즉, 화가의 기억이나 상상에 의존하여 화실에서 그려진 것이 아니라 캔버스를 직접 들고 야외에 나가 시간과 계절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의 풍경과 색채를 담은 것들이었다. 영국식 진경(眞景)이었던 것이다. 물론 가로 6피트에 이르는 대작을 야외에서 마무리할 수는 없었고 작품은 결국 실내에서 마무리 되었지만 존 컨스터블은 야외에 캔버스를 놓고 스케치를 하고 작품의 바탕이 되는 그림을 그린 다음 실내에서 대작을 완성했으며 이는 그 이전 화가들에게는 그 예를 찾기 어려운 것이었다. 「플랫포드의 수차 제분소」를 포함하여 그의 대표작 「건초마차」까지 존 컨스터블의 작품은 영국 왕립미술원을 통해 발표되었지만 영국에서는 큰 반향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프랑스에 소개되어 후대 프랑스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장 프랑수아 밀레로 대표되는 프랑스 바르비종파 회화에서 존 컨스터블의 영향이 짙게 나타나는 이유이다. 존 컨스터블은 일생 동안 영국에서 겨우 이십 점의 그림을 팔았지만 1824년 파리 살롱전에서 「건초마차」로 금상을 수상한 후 단 몇 년 동안 이십 점 이상의 그림을 팔았다. 나이 쉰 둘이던 1829년에야 존 컨스터블은 영국 왕립미술원의 정회원이 되었다. 1831년부터는 왕립미술원의 객원교수로 미술이론을 강의하기 시작했으며 강의는 학생들로부터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 그는 영국 왕립과학원(The Royal Institution of Great Britain )에서도 영국 저명인사들을 청중으로 강의를 펼쳤는데 이 자리에서 풍경화에 대한 세 가지 원칙을 발표했다.
첫째, 풍경화는 시적이어야 할 뿐 아니라 과학적이어야 한다.
(Landscape painting is scientific as well as poetic)
둘째, 상상력은 그 자체만으로 현실성에 필적하는 예술을 구현하지 못한다.
(The imagination cannot alone produce art to bear comparison with reality)
셋째, 독학으로 탄생한 위대한 화가는 없다.
(No great painter was ever self-taught)
그의 사후 19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만개한 사실주의, 인상주의 미술의 특징을 함축적으로 예견한 탁견이었다. 그가 당대 영국 회화의 대종을 이루던 신고전주의미술에 대해 부정적이었다는 것은 당연했다. 존 컨스터블은 나이 예순이던 1837년 런던 북쪽 햄프스테드(Hampstead)에서 사망하여 그곳 교회 묘지에 있는 먼저 떠난 아내 마리아 곁에 묻혔다. (인용: 영문 위키사전)
영국, 서퍽 플랫포드 수차 제분소
Flatford Mill, Suffolk, UK
존 컨스터블의 고향 풍경에 등장하는 많은 장소와 건물들, 「건초마차」에 등장하는 윌리 로트씨네 오두막집, 부친이 소유했던 플랫포드의 수차 제분소, 데덤계곡에서 멀리 바라 보이는 데덤성당의 종탑, 스투어강의 수문과 나무 다리, 그 옆에 있는 초가집 브릿지 코티지 등은 존 컨스터블이 작품활동을 했던 19세기 초 모습을 지금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데덤계곡은 영국의 빼어난 자연경관지역(Area of Outstanding Natural Beauty)으로 지정 관리될 만큼 풍경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그러나 이 지역이 다른 곳과 차별화되는 이유는 존 컨스터블의 생각과 작품 그대로 데덤계곡이 그 지역 사람과 어우러지는 풍경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며 더구나 그 모습을 오늘날에도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풍경의 아름다움에 미술의 역사성까지 더해진 것이다.
이 특별한 데덤계곡 가까운 곳에서 3년 넘게 살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존 컨스터블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 이스트 버골트와 그가 다닌 학교가 있는 마을 데덤 그리고 그가 화폭에 담았던 데덤계곡을 사진으로 담았다. 오늘 데덤계곡에서 깊은 가을에 담아온 플랫포드 수차 제분소 사진 한 장을 보고 영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 후 이러 저런 일상의 번다함을 핑계로 마음에만 담아 두었던 나의 영국 생활과 존 컨스터블의 풍경에 얽힌 이야기를 마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남기는 글이다. 뜻하지 않았던, 실은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긴 휴가를 끝내고 이제 다시 번다한 일상, 원래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2015
존 컨스터블, 자화상, 런던 테이트미술관
John Constables, Self-portrait(at 30 years old), 1806, Tate London, 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