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Marc Chagall)의 1911년 회화 작품 「나와 마을」(I and the Village) 베낀 그림

한때의 문학 소년이었던 나는 교과서에 실린 김춘수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을 좋아했는데 참고서에 실린 해설에 따르면 이 시는 시인이 샤갈(Marc Chagall)의 회화 작품 「나와 마을」(I and the Village)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시로 ‘봄의 맑고 순수한 생명의 이미지를 감각적 시어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했다. 그 시절에 이 시를 좋아한 사람은 나뿐만 아니어서 그때 시내 유명한 경양식집 상호가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세월 흘러 문학 소년은 오간데 없고 나이 육십 줄을 목전에 둔 할재만 남아 잠 못 드는 엄동의 긴 겨울밤에 뻘건 눈 비벼가며 「나와 마을」을 베껴 그려봤다. 그림을 베껴 그리며 원작인 「나와 마을」 자주 쳐다봤는데 아무리 그림을 봐도 김춘수의 감각적인 시어는 오버랩 되지 않고 그저 샤갈의 마을만 어른거릴 뿐이었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는 3월(三月)에 눈이 온다.

봄을 바라고 섰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이

바르르 떤다.

바르르 떠는 사나이의 관자놀이에

새로 돋은 정맥(靜脈)을 어루만지며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3월(三月)에 눈이 오면

샤갈의 마을의 쥐똥만한 겨울 열매들은

다시 올리브빛으로 물이 들고

밤에 아낙들은

그 해의 제일 아름다운 불을

아궁이에 지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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