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쓰 홍당무』를 본 이유는 포스터 때문이었다. '이쁜 것들 ... 다 묻어 버리고 싶다!'는 카피와 헝클어진 머리에 이 모습이 젊은 여배우의 것이 맞나 싶은 얼굴, 칙칙한 회색 코트 그리고 삽질의 달인이라는 영화 카피에 걸맞은 삽자루와 목장갑의 조합으로 이뤄진 포스터를 보고 이 영화는 꼭 봐 조야한다고 생각했다. 코메디 영화라 등장인물을 희화화하게 마련이지만 나 혹은 내 주변 사람들도 영화 속 삽질의 여왕 양미숙처럼 얼마나 잦은 삽질로 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그리고 거울 속 내 모습 역시 양미숙의 모습처럼 엉성하고 볼품이 없다. 그래서 『미쓰 홍당무』의 포스터를 보는 순간 이 영화를 보면 그 징한 삽질, 못난 인생이 적나라하게 스크린에 등장할 것이라 생각했고 못나고 부끄럽지만 그 모습이 내 것이기에 짠한 마음으로 영화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가 있었다.
영화는 기대대로 양미숙의 못난 삽질 생활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또 우리 삶이 그렇듯 어정쩡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되었다. 영화를 보는 중간 자지까가 같은 음달패설에 배꼽 잡고 뒤집어 지다가 더럭 맞이하게 되는 엔딩 타이틀을 보며 오랜 만에 재미있는 코메디 영화를 한편 보았구나 싶었다. 하지만 삼마이 음담패설이 난무하는 『미쓰 홍당무』를 삼마이 코메디 영화로만 칠 수 없는 이유는 애초에 내가 『미쓰 홍당무』를 봐야지 싶었던 바로 그 이유, 징글징글하지만 품고 가야 할 우리 보통 사람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어정쩡한 해피 엔딩이라는 미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달리 생각하자니 이 영화에 대한 평단의 아낌없는 찬사에도 불구하고 흥행이 잘 되지 않은 이유 역시 내가 『미쓰 홍당무』를 봐야겠다고 생각한 이유 거기에 있지 않나 싶기도 하다. 18세 이상만 관람이 가능한 등급을 받은 이 영화는 베드 씬 하나 없기 때문에 어느 젊은 총각들이 이 영화를 보겠으며 젊은 여자가 행할 수 있는 갖가지의 궁상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영화를 어느 꿈 많은 처녀들이 보러 오겠는가? 그래서 영화 같은 꿈을 잃어버린 나 같은 아재들이나 '그렇게 못나게 살아왔구나, 그렇게 못나게 살아가겠구나' 싶은 심정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는 영화인데 우리 세대는 더 이상 영화를 믿지 않고 영화를 잘 보지 않는다. 관객이 찾지 않은 『미쓰 홍당무』가 그래도 내 기억에 남을 영화가 된 이유는 배우의 연기에 내 방식으로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담아 출연진들의 연기가 빛났기 때문이라 하겠고 이 배우들의 연기를 생동감 있게 살린 감독의 빼어난 연출 때문이기도 하겠다.
흥행부진에도 불구하고 출연 배우들의 호연은 최근 큰 영화제에서의 수상으로 보상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거기다 여자 분이 아니면 절대로 연출해내지 못 할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의 연출 능력이 앞으로 많은 영화에서 더 많은 빛을 발하기를 바란다. 끝으로 주연 양미숙과 조연들이 교사로 학생으로 또는 학부모로 분해서 좌충우돌하는 배경은 원불교 교단이 운영하는 사립 여자 중고등학교로 비추어 지는데 오늘날 우리나라의 기성교단 중 과연 어느 종교가 그렇게 영화 속에서 자신들의 종교를 희화화하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싶어서 신선한 생각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 유래나 교리, 교의에 관하여 들은 바 없고 아는 바 없지만 원불교에 대하에 무척 긍정적인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을 따로 기록해둔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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