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宮崎 駿)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은 모두 다 걸작이지만 한 작품씩 따로 떼어놓고 보면 각자 개성도 뚜렷하다. 그 중에서 밝고 가벼운 기분으로 즐길 수 있는 작품을 꼽으라면 『마녀의 택급편』(魔女の宅急便) 혹은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나온 제목으로는 『마녀 배달부 키키』를 꼽겠다.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르는 마녀라면 서구에서 온 동화를 모티브로 한 것이겠지만 서양의 마녀가 검은 색 망토에 크고 키 높은 모자를 쓰고 음침한 달밤에 귀곡성을 향해 날아가는 마귀 할망구라면 지부리의 마녀는 이제 막 가슴이 봉긋하게 올라오고 뺨이 발그스레한 사춘기의 티없이 맑은 마녀 키키다. 대대로 모계를 따라 마녀를 업으로 삼는 가정에서 태어난 마법 소녀 키키, 엄마 마녀와 친지들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 성장한 키키는 아직도 젊고 탱탱한 엄마 마녀로부터 독립하여 자신만의 나와바리(なゎばり)를 찾아 떠날 때가 되었다. 며칠 밤낮을 쏟아지는 폭풍우를 헤치고 마녀로 독립할 '바다가 보이는' 마을을 찾아 떠나는 키키, 아름다운 밤하늘을 빗자루 타고 날아 다니며 아래를 내려다보니 밤 열차가 어둠을 가르며 달리고 있고 빗자루 앞에 걸어 놓은 포터블 오디오를 틀 때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노래가 「루즈의 전언」(ル-ジュの傳言), 의역하자면 립스틱이 전하는 말이다. 1954년 생으로 1972년에 데뷔한, 그리고 일본의 버블이 한창이던 80년대 최고의 인기를 누렸으며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자랑하는 일본의 국민 가수인 애칭 유밍(Yuming), 마츠토야 유미(松任谷由美)의 1975년 노래로 『마녀의 택급편』 사운드 트랙에는 그녀의 목소리가 두어 곡 담겨 있고 그 중 「루즈의 전언」은 두왑 두왑하며 따라 부르는 동안 늘 박하 사탕의 향내를 느끼게 해서 운전하다 졸음이 쏟아지는 언덕 길에서 어김없이 틀어 대는 노래가 되었다. 또한 지겨운 와이셔츠 다림질을 위한 내 선곡에는 「루즈의 전언」이 빠지지 않는다. 다섯 개 흰 와이셔츠가 다려지는 순간 뒤를 휙 돌아보니 뒤 베란다는 휴일의 서산 노을을 아름답게 담고 있다. 2009 matsutoya yumi rouge no den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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