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트웰 교회와 마을│존 컨스터블│1815년│테이트 갤러리

Brightwell Church and Village, John Constable, 1815, Tate Gallery, UK

 

2011. 5.

영국 시골길은 마차가 다니던 옛길에 아스팔트 포장을 덮은 격이라 도로 폭이 무척 좁다. 왕복 일차선 도로가 많아 마주 오는 차를 만날 경우 피양공간으로 한참 후진 해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 난처한 순간에 서로 양보 하지 않으려고 운전자끼리 얼굴을 붉히는 경우를 나는 오랜 기간 영국에 살면서 본적은 없다. 출근할 때 차를 몰고 나와 간선도로까지 나가려면 여우골길(Foxhall Road)이라는 지선도로를 3km 정도 타야 하는데 왕복 2차선인 여우골길에는 갓길이 전혀 없어서 가끔 이 도로 위에서 자전거를 탄 사람을 보면 운전하는 내 가슴이 덜컥 놀라곤 했다. 좁은 시골길에 차량 통행을 위해 억지로 만든 2차선이기 때문이리라.

 

날씨 좋은 휴일이면 가끔 자전거를 타고 가까운 영국 시골길을 달렸다. 위험천만한 여우골길로 자전거를 올릴 엄두는 못 내고 집 주면 숲 속으로 열린 좁은 길을 빙 돌아 다녔다. 대도시 시골을 막론하고 영국의 도로환경은 이웃 유럽 대륙국가들과 달리 전혀 자전거 친화적이지 않다. 영국에 사는 동안 늘 그 점이 아쉬웠다. 여우골길이 끝나는 지점 주요 간선도로가 시작되는 지점에 큰 로터리, 영국식으로는 라운더밧(roundabout)이 있고 이 라운더밧은 동쪽 방향으로 또 다른 시골길의 분기점이 되는데 이 시골길은 브라이트웰(Brightwell)이라는 작은 마을로 이어진다.

 

브라이트웰까지의 시골길은 주변 풍경도 아름답고 내리막과 오르막이 급하게 이어지는 아주 짧은 구간이 있어 자전거를 탈 때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재미 있었다. 소심한 마음에 혹여 이 좁은 내리막 길에 차라도 튀어나올까 그때마다 가슴을 졸이기는 했지만 밋밋한 평지 길 위에서 오랫동안 자전거 페달을 밟을 때 느끼는 지루함을 달래기에 좋았다. 내리막을 지나왔으면 오르막길을 만나는 법, 브라이트웰의 오르막길에서 자전거 안장에서 내려오지 않고 오르막 끝까지 페달을 밟았던 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영국에서 담아온 사진들과 그에 얽힌 영국 풍경화가 존 컨스터블과 얽힌 이야기를 정리하다가 존 컨스터블이 그린 「브라이트웰 교회와 마을」(Brightwell Church and Village)이라는 무려 1815년 작품을 우연히 발견했다. 작품을 보는 순간 ‘어, 내가 아는 길인데...’하는 탄식이 나왔다. 지금은 그림보다 훨씬 나무들이 울창해서 그림과 똑 같은 구도로 풍경 전체를 조망할 수 없겠지만 의심할 여지 없이 브라이트웰의 자전거 롤러코스터 바로 그 구간이었던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본 풍경이 250여 년의 시공을 건너 풍경화로 내 눈 앞에 펼쳐졌다. 존 컨스터블의 풍경화가 특별한 이유는 작품 속에 표현된 언덕과 들판뿐 아니라 마을과 교회까지 오늘날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1815년에 완성된 존 컨스터블의 작품을 보고 있으니 자전거 안장 위에서 보던 그 풍경이 눈에 선하다. 그 기억을 되살리려 사진 파일을 뒤져 봤는데 브라이트웰을 풍경을 담은 사진은 남아 있지 않았다.

 

「브라이트웰 교회와 마을」은 드물게도 존 컨스터블이 다른 사람의 주문을 받아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존 컨스터블은 자신이 그리고 싶은 풍경을 그렸지 남이 그려 달라고 하는 풍경을 거의 그리지 않았다. 존 컨스터블은 야외에서 30cm 정도의 작은 습작을 먼저 그린 다음 이를 바탕으로 화실에서 대작을 그리는 패턴을 고수했다. 「브라이트웰 교회와 마을」은 그의 습작만큼 작은 크기지만 꽤 정성을 들인 듯 완성도가 높다. 이 작품이 주문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검색으로 얻은 이 작품 사진은 테이트 갤러리(Tate Gallery) 소장으로 되어 있는데 아마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에 전시되어 있을 것이다. 테이트 브리튼을 몇 차례 갔는데 밀레이나 에드워드 번 존스, 로제티 같은 화가들의 작품만 눈에 담느라 존 컨스터블의 소품은 보이지도 않았다.

 

존 컨스터블은 스톡 바이 네이런드(Stoke by Nayland), 헤이들리(Hadleigh), 하리치(Harwich), 야머스(Yarmouth) 같은 곳의 풍경화도 남겼는데 하나 같이 내 발길이 닿은 익숙한 마을 이름이다. 그러나 영국 살 때는 이 마을들을 존 컨스터블과 결부시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존 컨스터블이라는 유명한 영국 풍경화가가 있었고 내가 살던 지역을 기반으로 작품활동 했다는 정도만 알았고 그의 대표작 몇 점을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테이트 브리튼에서 본 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제와 못 찍은 내 사진들과 함께 영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되돌아 보니 내 발길이 닿은 곳, 내가 사랑했던 많은 풍경들이 존 컨스터블의 공간과 일치했다. 살 때는 몰랐는데 떠난 후 뒤돌아 보니 존 컨스터블의 작품 속 못 찍은 내 사진 속의 그곳, 서퍽(Suffolk)이 그립다.  2015

 

St. John the Baptist Church, Brightwell Rd., Ipswich, Suffolk, 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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