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 2022 HUP

 

2022년 11월 기준, 인생통닭 폐점했다. 문을 닫은 업장에 붙은 안내를 보면 '같은 사장이 다른 음식을 팔 예정'이라고 한다. 이래 저래 인생 사연 많고 복잡하다.


2년 전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를 온 후 더러 지나다니는 길에서 치킨 한 마리 4,000원이라는 인생통닭을 보았다. 그 집앞을 지나갈 때마다 대체 어떤 닭을 어떻게 팔길래 후라이드 치킨 한 마리에 4,000원이라는 말인가, 그 맛이 궁금했다. 2021년 11월에는 지속적인 원가 상승으로 어쩔 수 없이 치킨 한 마리 가격을 5,500원으로 올린다는 안내문을 보았다. 그 안내문을 보고서도 한 마리 5,500원 치킨은 어떤 맛일까 궁금했다.

어제 안과 검진을 다녀오다 인생통닭 앞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마침 점심 때라 이번에야 말로 인생통닭의 맛을 확인할 기회라 생각하고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5,500원 치킨 한 마리를 시켰다. 내가 자리잡은 테이블 건너편에는 그 한낮에 벌써 취기가 한껏 실린 큰 목소리로 요란하게 대화를 주고 받는 등산복 차림의 할배 셋이 자리를 잡고 앉아 치킨 추가, 쏘주 추가를 외쳤고 우리말이 어눌하게 들리는 종업원은 할배들에게 계산이 되지 않아 주문에 응할 수 없다고 맞받아 치고 있었다. 그 소리에 여기 선불 시스템인가 했지만 내게는 주문과 함께 결제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이윽고 내 테이블에 5,500원 치킨 한 마리가 놓였고 그 맛은 익히 내가 아는 옛날 통닭의 맛과 같았다. 나는 아내와 아들이 좋아하는 BBQ니 하는 이름난 배달치킨을 먹을 때마다 내가 닭을 먹는 겐지 소스를 먹는 겐지 대체 무얼 먹고 있는지 헷갈릴 때가 많아서 이처럼 온전히 내가 기억하는 옛날 방식으로 기름에 튀겨낸 통닭을 좋아하며 직잠대로 5,500원 치킨은 내 입맛에 맞았다. 뜨거운 김이 폴폴 올라오는 튀긴 닭을 맛있게 뜯어먹는 동안 할배들이 차지한 테이블 쪽에서 컵이 깨졌는지 병이 깨졌는지 유리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개방된 주방에서 닭을 튀기고 있던 젊은 청년이 익숙한 동작으로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쥐고 소리가 들린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으며 이어 할배 하나가 바지 앞 자크를 움켜쥐고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내 앞을 지나갔다.

처음보았을 때 한 마리 4,000원 치킨은 5,500원으로 가격이 올랐고 그 가격이 내려가는 일이 있어도 안되겠는데 순간 5,500원 치킨이 갑자기 맛이 없어져 버린 까닭이 내가 닭을 먹을만큼 먹어 슬슬 배가 불러 그랬던 것인지, 시간이 지나 기름진 튀긴 닭이 식은 통닭이 되어 버렸기 때문인지, 아니면 2022년 3월에 이 나라에서 무슨 일 벌어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쳐 갔기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잠깐 맛나게 인생통닭 잘 먹기는 했는데, 뜻한대로 그 맛을 봤기 때문에 다시 찾을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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