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2010 HWP
영국에서의 첫 겨울 꾸물꾸물한 날씨가 하도 길게 이어져서 장기 일기예보를 검색했더니 다가올 한 달 내내 흐림과 비가 계속되겠다는 예보뿐이었다. 달력 위에 아이콘으로 표시된 장기 일기예보 화면에 한 달 내내 햇볕은 콧뵈기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건 올해 영국 날씨가 이상기후여서 그런 것이리라, 내년에는 이러지 않으리라 믿고 싶었는데 그해 겨울을 나고서야 원래 영국의 겨울 날씨가 그런 것이라는 것을, 첫해 겨울 날씨가 이상기후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 기후라는 것을 알았다. 겨울 날씨는 흐림과 비의 연속인데 흔히 썸머타임이라고 하는 일광시간절약제 때문에 10월말 할로윈데이를 기점으로 한 시간 빨라지면 그 한 시간이 늦춰지는 다음 해 4월초 부활절 즈음까지 오후 세시면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해서 오후 네 시에는 벌써 캄캄한 오밤중이 되어버렸다. 이 몇 달 동안 정신줄 놓고 있다가는 우울증 걸리겠다 싶었다.
겨울철에는 형편이 괜찮은 많은 영국인들은 남유럽으로, 미국 플로리다나 캘리포니아로 심지어 남아프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로 햇살을 찾아 떠난다. 그래서 영국의 관광수지는 늘 적자다. 형편도 되지 않을뿐더러 일을 하러 먼 영국에 간 나는 매주 주말 영국 일기예보에 목을 매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낮에 잠시 햇살이 비칠 것이라는 예보대로 햇살이 들었고 그 길로 집에서 가까운 데덤계곡(Dedham Vale)으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위 사진들은 그 겨울에 담은 사진들이다. 영국에서 풍광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화가 존 컨스터블의 고향(Constable Country), 데덤계곡과 존 컨스터블에 풍경화에 등장하는 스투어강과 데덤, 플랫포드 수차제분소, 윌리 로트씨네 오두막집은 겨울에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못 찍은 사진을 두고 이제와 다시 생각하니 그곳이 데덤계곡이라 아름다웠던 것이 아니라 그날이 춥고 습하며 흐리고 비 오는 날이 이어진 영국의 겨울 중에 잠시 햇살이 든 날이라 데덤계곡이 아름다웠던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데덤계곡│존 컨스터블│1827년│스코틀랜드 내셔널갤러리, 에든버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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