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국도(國道)의 들꽃

 

길 어깨의 틈 사이
겨우 얼굴을 내민 붉은 흙을
너는 단단히 움켜쥐고
낮은 키로 서있구나
나는 너의 이름도
네가 속한 족속의 이름도 몰라
그냥 이름 없는 들꽃이라 부르지만
그것은 네가 이름도 족보도 없는
미물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무지해서 너의 족속을 모르고
너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이란다
더러는 누구인가 너의 이름을 불러 주어
그로부터 네가 어떤 의미가 되었다고 하지만
너는 누가 불러주어 그로부터 의미가 된 것이 아니라
그가 너를 부르기 전부터
그가 너를 잊은 후에도
늘 그 자리에 한결같이 있어 왔던 무엇이었음을 알겠다
그래서 오늘
강촌 비탈길에 잠시 앉아
봄볕 아래 스스로 싹을 키워
봄바람에 스스로 씨를 태우는 너를 잠깐 흘겨보며
네가 이름이 없기 때문에
내가 너를 이름없는 들꽃이라 부른 것이 아니라
내가 너의 이름을 몰라
너를 이름없는 들꽃이라 불렀음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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