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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2009
17세기 초 네덜란드를 휩쓸고 지나간 튤립 투기 사건(Tulip Mania)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투기 사건이다. 당시 네덜란드는 긴 독립전쟁 끝에 합스부르크 왕가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얻었으며 한편으로 해외 식민지 약탈 경쟁에 뛰어 들어 엄청난 이익을 얻었고 마침 직물 산업도 호황을 맞아 경제적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이 시대를 역사적으로 네덜란드의 황금시대(Dutch Golden Age)라고 한다.
경기가 호황이자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고 돈 벼락을 맞은 신흥 부호들은 자신의 부를 과시할 욕망의 대상을 찾고 있었으니 그게 튤립이었다. 16세기말 터키에서 네덜란드로 전해져 재배되기 시작한 튤립은 부호들의 수집 대상이 되어 1624년에는 황제 튤립(Semper Augutus)이라는 진기한 품종의 튤립 구근 한 뿌리가 당시 네덜란드 화폐로 1,200플로린에 거래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때 네덜란드의 평균소득이 150플로린이었다.
튤립은 꽃이 만개할 때까지 그 무늬와 색깔을 예상할 수 없는 특징이 있으며 돌연변이 때문에 하나의 뿌리가 평범한 튤립으로 피어날 수도 황제 튤립으로 만개할 수도 있었고 땅 한 조각만 있으면 어느 곳에나 심어 쉽게 경작할 수 있었다. 투기의 대상으로 최적의 조건을 갖춘 셈이었다. 그래서 가난한 서민들까지 가세하여 고가에 튤립 뿌리를 사서 심는 투기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이다. 봄에 그것도 아주 짧게 피는 튤립이 투기 대상이 되자 쉽게 말하자면 밭떼기 거래 곧 선물거래의 대상이 되었고 선물거래가 활발해지자 튤립의 뿌리는 거래를 쉽게 하기위해 표준화 되어 마치 증권시장의 주식처럼 거래되기 시작했다. 투기에 눈이 멀어 이런 튤립 거래에 뛰어든 사람들은 공장 직공이나 농사꾼 같은 서민들까지 예외가 없었다.
이런 투기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부유한 꽃 수집가들의 수요가 지속되어야 했다. 하지만 투기 열풍으로 진기한 튤립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부유한 꽃 수집가들은 더 이상 튤립에 많은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 대부분 튤립 거래는 어음 결제로 이루어졌고 어음의 만기는 튤립이 만개하는 이듬해 봄이었는데 부유한 꽃 수집가들이 값비싼 튤립을 외면하자 어음이 된 튤립 뿌리는 돌고 돌아 만기에 지불할 사람이 없는 실체 없는 거래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파국은 뻔한 방식으로 닥쳤다. 싼 값에 내놓은 튤립조차 팔리지 않았고 거래에 뛰어든 투기꾼들은 줄줄이 도산을 했다. 이러한 튤립 시장의 붕괴가 심각한 사회 문제를 야기하자 네덜란드 정부가 나서 극약 처방을 내렸는데 매매가격의 3.5%만을 지급하는 것으로 모든 채권 채무를 정리하도록 명령한 것이다. 법원도 투기에서 발생한 거래는 정당성이 없으므로 채무를 갚지 않아도 된다는 쪽에 서 있었다. 극약처방으로 튤립 가격이 안정되자 호사가들이 다시 튤립 시장으로 모여들었고 2~3년이 지나자 황제 튤립의 가격은 투기 발생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하지만 가난한 서민들이 한몫 보기 위해 투기를 벌였던 낮은 등급 튤립 값은 이후에도 회복되지 않았다.
오늘날 투기 과열에 따른 부작용을 경고할 때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 사례가 자주 인용되지만 그 사례가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견해도 있다. 튤립 투기 이후 네덜란드 경제는 큰 침체기를 맞게 되지만 사실 그 시기 네덜란드는 유럽의 패권과 해외 식민지를 두고 이웃 영국 프랑스와 같은 이웃 강대국들과 벌인 전쟁으로 국력이 크게 고갈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특히 영국에 밀려 고전하던 시기가 마침 튤립 투기 시기와 겹쳤다는 점 등이 간과되었고 투기 피해 역시 이 거래에 참여한 일부의 문제였을 뿐이라는 반론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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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맞아 한강 자전거길로 자전거를 몰고 나갔다가 길가에 핀 튤립을 보고 디카로 사진 몇 장 찍어왔는데 집으로 돌아와 오늘 담아온 튤립 사진들을 보니 오래 전에 블로그에 올렸다가 내려버린 후 묵은 폴더에 방치되어 있는 튤립 투기에 대한 위 잡문이 생각났다. 그때 당시 잠깐 필름카메라로 사진 찍는 재미에 빠져있을 때였는데 뭐든 후다닥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 조급한 성정이 필름카메라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는 데는 그 결과물, 내가 찍은 사진이 증명했기 때문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후 필름카메라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그때 찍은 사진과 잡문들은 묵은 폴더로 찌그러버렸던 것인데 그로부터 꽤 세월이 흐른 오늘 찍은 디카로 찍은 쨍한 튤립 사진 대신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은 흐릿한 옛 필름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포스팅하는 까닭을 스스로 잘 모르겠다. 책을 읽다가 다시 읽을 가능성이 거의 없음을 알지만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있는 페이지를 접어놓는 그런 기분이 아니겠는가 짐작할 뿐이다. 다음 주말이면 튤립 꽃도 툭툭 떨어져 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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