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호수지방과 힐탑

Hill Top Farm and Lake District, Cumbria, UK

2012. 6. 4.

 

영국 주재원으로 일할 때 휴가가 생기면 『세계를 가다』 같은 여행 안내서를 들고 영국과 유럽 여러 곳을 여행 다녔다. 그런데 이런 여행 안내서를 따라 여행하다 보면 괜한 헛걸음 했다 싶을 때가 있는데 영국 호수지방 여행 도중 방문한 힐 탑(Hill Top)이 그런 곳 중 하나였다.

안내서에는 힐 탑이 20세기 초 유명한 여성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동화작가인 베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가 살던 곳으로 그곳 농장에서 키우던 토끼를 관찰하면서 유명한 그림 동화 『피터 래빗 이야기』(The Tale of Peter Rabbit)을 탄생시킨 곳으로서 꼭 가보아야 할 호수지방의 명소로 소개되어 있었다. 나로서는 그림 동화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때는 어린이였던 아들이 어쩌면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어서 좁고 구불구불한 영국의 시골길로 차를 몰아 힐 탑에 도착했는데 그 집이 17세기에 지어진 호수지방 전통 양식의 오랜 고택이라는 것 빼고는 별 볼 거리가 없었다. 게다가 당시 나루토의 열혈 팬인 아들이 피터 래빗을 알고 또 좋아하리라 믿어버린 것 역시 나의 착각이었으니 결과적으로 나는 여행 안내서를 보고 헛걸음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힐 탑에 도착하여 데면데면한 얼굴로 이왕 온 곳이니 구석구석 힐 탑을 둘러보는데 대부분 『피터 래빗 이야기』 책을 손에 쥔 일본인 단체관광객들이 좁은 힐 탑 가옥에 모여들었다. 영국과 유럽 여러 곳을 여행 다니면서도 일본인 단체관광객을 처음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 일본인들의 피터 래빗 사랑은 여전하구나, 흥미로웠다. 힐 탑 내부구경을 서둘러 마치고 힐 팁 옆에 마련되어 있는 기념품 매장에 잠시 들렸는데 아내는 그 기념품 매장에서 컬러 삽화가 실린 『피터 래빗 이야기』를 샀고 아직도 서가에 책을 고이 모셔두고 있다.

오늘 언뜻 그 책이 눈에 들어 힐 탑에서 담아온 못 찍은 사진을 다시 뒤져보며 남기는 잡문인데 먼 영국 호수지방으로 여행가서 괜한 헛걸음 했더라는 후회보다 힐 탑을 찾지 않았더라면 경험해보지 못했을 영국의 6월 그 짧은 여행 중 영국 호수지방의 시골 길과 집들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이 아련하다.

 

영국 호수지방과 힐탑

Hill Top Farm and Lake District, Cumbria, UK

2012. 6. 4.

 

배경음악

전수연 - 좋은 날

 

National Trust - Hill Top Beatrix Potter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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