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맞은 편 빌딩 1층에 꽤 괜찮은 초밥과 참치회를 내는 음식점이 있다. 점심 메뉴로 대구탕을 내는데 한 그릇에 9,000원이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그 집에서 대구탕으로 점심 끼니를 때운다. 그 옆 빌딩에 1층에는 통영 산지 직송을 표방하는 횟집이 있는데 그 집 생대구탕 한 그릇은 22,000원이다. 같은 대구탕을 끓여 내는데 생 대구라 가격이 갑절 이상 비싼 것일까? 점심 한 끼 먹는데 내 기준으로는 가격이 후덜덜해서 아직 그 집 생대구탕을 맛 본 적은 없다. 그런데 회유성 어종인 대구라는 생선은 우리 나라에서는 거제도 앞 바다에서 겨울에서 봄 사이 짧은 기간, 소량 잡히는 어종이고 그 마저도 한때 씨가 말라 잡히지 않다가 나라에서 치어 방류 사업이다 뭐다 해서 회유를 유도하는 방법을 써서 근래 들어서야 조금 잡히는 귀한 어종으로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대구탕으로 대량 소비되는 대구는 먼 유럽의 북해나 북아메리카의 뉴펀들랜드 어장, 북태평양에서 잡히는 대구를 냉동으로 들여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집 생대구탕은 대체 어디서 그 귀한 생 대구를 일년 내내 조달해온단 말인가? 뿐만 아니라 얼마 전 퇴근 후 그 통영 산지 직송 횟집에서 회를 안주 삼아 술 한잔 마신 적이 있는데 그 집 주방은 지하에 있는 것인지 혹은 윗층에 있는 것인지 전혀 알 수도 없는 구조여서 정말로 생 대구를 조리해 생대구탕을 내는 것인지, 냉동 수입 대구를 도끼로 장작 패내듯 쳐내 대구탕을 내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이 생대구탕이 생 대구를 조리해낸 것인가 냉동 대구를 조리해낸 것인가 대구탕을 먹는 소비자가 가려내야 할 것인데 미각이 저렴한 나로서는 도저히 극복 불가능한 미션일 따름이고 설령 그것을 가려낼 입맛의 감각이 내게 있다 하더라도 생 대구와 냉동 대구의 맛 차이가 두 갑절 이상 가격을 치뤄도 좋을 만큼 확연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어렵다. 흔히 선진국이라 하는, 서유럽에서의 짧지 않은 내 외국살이 끝에 얻은 경험이니, 이 나라 대한민국, 간단히 말해 하드웨어 측면에서는 이미 그 서유럽 나라들보다 훨씬 사람 살기 편한 나라다. 다만, 서로 속이지 않고 그러니 서로 믿고 사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아직 멀었다는 생각을 오늘 냉동 대구탕으로 점심 한 끼 들며 생각했다. 그 생대구탕도 어쩌면 냉동 대구탕일 수 밖에 없으나 실력있는 조리사가 좋은 식자재로 정성스럽게 요리해낸 음식이라 비싼 것이라면 그저 대구탕이라 하더라도 비싸기로 무슨 상관이랴? 이 뻔한 팩트(fact)를 두고도 속으니 속이는 것이라 생각하면 꼭 속이는 자들만 탓할 수도 없는 일이기는 하다만.

 

 

 

이미지 출처: 겨울철 생대구탕, 여기가 진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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