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어릴 때 동요보다 유행가를 더 좋아했던 나는 장년이 된 지금도 동요보다 어릴 때 들었던 가요를 더 잘 기억한다. 현란한 엉덩이 돌림과 함께 「 거짓말이야 」 를 부르던 가수 김추자의 모습은 비록 아스라한 잔상만 그 시절 텔레비전 흑백 화면처럼 흐릿하게 기억에 남았지만 김추자라는 이름만 떠올려도 언제나 느낌은 강렬하다.
오늘날 아이돌 저리 가라 할 만큼 섹시 코드로서 김추자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 했다는데 나는 그 시절에 어린 아이였던 탓에 그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잘 모르겠고 다만 후라이 보이 곽규석이 진행하는 동양방송 TBC의 쇼쇼쇼에 반짝이 원피스를 입고 등장 무대 이쪽 끝과 저쪽 끝이 좁은 듯 휘젓고 다니던 그녀의 열정적인 무대 매너와 그녀가 「 무인도 」 를 부를 때 백 댄서들이 발레 같은 춤사위로 그녀를 에워싸던 화려한 모습은 기억에 남아있다.
그 김추자를 언제부터인가 텔레비전에서 볼 수 없었고 공교롭게도 그 즈음 김추자가 흔들어대는 율동이 실은 북한에게 보내는 수신호라는 어처구니 없는 소문과 함께 간첩 혐의를 받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던 기억이 또 남아있다. 그리고 쇼를 좋아하던 나는 좀 더 자라 70년대 후반 칠흑 같던 새벽에 등장한 가수 혜은이를 기억한다. 내 어린 기억 속 혜은이는 「파란 나라」를 부르던 뽀뽀뽀의 뽀미언니가 아니라 비음으로 「 제3한강교 」 를 꺾어 넘기며 부르던 혜은이다.
어린 내 가슴을 흔들던 히트곡 「 제3한강교 」 를 따라 부르며 나는 한강 위의 다리가 몇 개나 되는 것인지 몰라 억울했다. 어느 날 그녀가 부르던 「 제3한강교 」 의 가사는 "어제 처음 만나서 사랑을 하고, 우리들은 하나가 되었습니다."에서 "어제 처음 만나서 다짐을 하고, 우리들은 맹세를 하였습니다"로 변해 버렸다. 또 "이 밤이 지나면 첫차를 타고 이름 모를 거리로 떠날 거에요"가 "이 밤이 지나면 첫차를 타고 행복 어린 거리로 떠날 거에요"로 변해 버렸다.
혜은이가 「 제3한강교 」 를 처음 발표했을 때 처음 만나 사랑을 하고 하나가 된 두 사람이 이름 모를 거리로 떠나는 극적인 가사가 왠지 좋았는데 어처구니 없게도 노래 가사는 처음 만나 다짐하고 맹세하고 행복 어린 거리로 떠나는 말도 안 되는 시시한 결말로 가사가 갑자기 바뀌어 버린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니 김추자의 춤사위가 간첩의 수신호가 되고, '이름 모를 거리'를 노래할 수 없는 캄캄한 암흑의 시대였다는 것은 훨씬 커서 알게 되었다.
서울에 왔을 때 내 어린 기억 속의 제3한강교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한남대교가 있었다. 제3한강교는 혜은이가 부르는 노래 가사에나 있는 다리였다. 한강은 사람을 압도하지 않고 도도하게 흐른다. 강물에 격이 있어 그 최고 격에 대하(大河)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한강이야말로 대하이며 그 보다 더 넓거나 좁아서도 혹은 그 보다 길거나 짧아서도 대하라는 말을 붙일 수 없다.
한강 물길을 따라 자전거가 흘러 내리고 봄이 오는 한강 위에 체증으로 꽉 막힌 한강변 간선도로 위에 노래도 흘러 내린다. 노래처럼 '젊음은 피어나는 꽃처럼 이 밤을 맴돌다가 새처럼 바람처럼 물처럼 흘러만' 간다. 그러고 보니 무엇이 노래인지, 무엇이 세월인지, 무엇인지 강물인지 잘 구분되지도 않는데 여튼 무언가 흘러가기는 흘러가는 모양이다.
https://youtu.be/Nj549b_kwsU?si=DJiCLX8wWGbLK2u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