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롯데백화점 미성복어불고기

DEC 2018 HWP

 

생선에 무나 미나리 등 채소를 넣고 맑게 끓여낸 탕을 지리라 하는데 지리는 치리(ちり)라는 일본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제 시대를 거치며 우리의 일상 용어에 스며든 일본말을 우리말로 순화시키는 것을 올바른 것으로 알아 한때 우리가 자연스럽게 쓰던 많은 일본말들이 우리말로 바뀌었는데 유독 지리라는 말은 그것이 본래 일본말이었나 싶을 정도로 요지부동으로 우리 일상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 한편 많은 사람들이 고춧가루 팍팍 뿌려 얼큰하게 끓여낸 탕을 우리의 ‘전통’ 탕으로 알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고추는 임진왜란을 전후로 하여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전래된 향신료일 뿐더러 그것이 대량 소비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라 오히려 지리 같은 맑은 탕 요리가 우리 조상님들이 드셨던 전통 탕 요리다.

지리는 어떤 특정 음식이 아니라 하나의 조리 방법이라 아구 지리, 대구 지리 같은 갖은 지리들이 있지만 지리의 대표주자는 단연 복지리다. 복어는 독성 때문에 우리 조상님들은 전혀 드시지 않았고(*) 일본, 특히 큐슈 지방의 식 재료로 알려져 있으며 오늘날 일본 사람들에게는 불세출의 위인으로, 우리에게는 일제 침략의 원흉으로 알려져 우리 안중근 의사가 쏜 총탄에 맞아 죽은 이토 히로부미가 큐슈 지방 출신으로 이 복요리를 무척 즐겼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난다. 복어회는 물론이려니와 복지리는 독성 때문에 그 손질방법이 까다로워 훈련 받은 조리사의 손길을 거쳐야 하므로 흔히 접할 수 없는 값비싼 요리라서 내 어릴 때는 복어 코빼기 조차 구경한 적이 없고 성년이 되어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여전히 복요리는 접대를 빙자한 특별한 기회가 있을 때야 맛볼 수 값비싼 요리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주변에 복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주변에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나도 점심 시간에 뭔가 특별한 별미가 생각 나는 날 시원한 복지리 한 그릇을 찾게 되었다. 소득 증가에 따른 수요 증가, 양식에 따른 공급 증가가 만들어낸 결과이리라.

계획만 화려했지 늘 그렇듯, 별 한일 없이 지나버린 지난 연말 연휴 중 전시 보러 갔다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특히 발품이 드는 전시 관람 전에는 반드시 배를 채워야 하기에 간단한 라면 김밥을 생각하던 중 우연히 복집 간판이 눈에 들어 그래 휴가 중 별 한 일도 없는데, 달리 돈 쓴 일도 없는데 점심 한 끼 제대로 먹자 싶어 복집에 자리 잡고 앉았다. 사실 낮술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전채로 나온 복어 껍질 무침을 보자 청하 한 잔 청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새콤달콤한 복무침에 청하 한 잔, 복지리 속에서 집어낸 미나리와 복어 살집에 청하 한 잔 마시며 낮술에 기분 좋게 알딸딸해졌다. 우리는 복어를 줄여 복이라 하고 복어를 뜻하는 일본말 후구(ふぐ)도 일본말로 복 복(福)자의 훈(訓)과 같다. 단 술, 맛난 음식 먹으며 새해에는 그 “복”이 내게 우수수 내렸으면 했다.

 

(*) 최근 『조선의 미식가들』 책을 읽다가 우리 조상님들이 복어를 전혀 드시지 않았다는 내 표현이 완전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 더러 조선 시대 우리 조상님들 남긴 기록에 의하면 지금 우리가 먹는 복국이 조상님들이 드시던 복국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이 블로그는 찾는 사람이 거의 없으나  글을 쓴다는 것은 항상 알아 보고 주장할 것이며, 조심하여 주장할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그 교훈을 새기자는 뜻으로 원문을 수정하지 않고 따로 첨언으로 남겨둔다. 2020. 3.

 

 

 

Hugh Grant & Haley Bennett

"A Way Back Into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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