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출신인 나조차 돼지국밥을 부산 음식으로 안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고등학교 때까지 내가 아는 외식 음식이라 해봐야 짜장면이 고작이었고 내가 본격적으로 밖에서 음식을 사먹기 시작했을 때는 부산을 떠나 서울에 정착한 뒤였으므로 돼지국밥과 관련한 추억이 내게 있을 리 없다. 아마 성년이 된 후 가끔 부산에서 어린 시절 친구들과 만나 소주잔 기울이며 먹던 돼지수육, 돼지국밥에 입맛을 들여서 그제야 내가 돼지국밥을 부산 음식으로 기억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간 돼지국밥을 6.25 때 부산으로 피난 온 이북 사람들이 소개한 음식으로 알고 있었는데 검색 해보니 이북 기원설에 경남 밀양 기원설, 제주도 기원설까지 자못 그 썰들이 다양하고 또 나름 근거가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다만 어쨌든 오늘날 돼지국밥을 부산 음식으로 치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돼지고기는 기름기 덩어리 식재료인데 돼지국밥 국물은 이게 돼지고기에서 우려낸 국물이 맞나 의심스러울 만큼 담백한 국물을 특징으로 한다. 서울에서도 더러 부산식을 내건 돼지국밥을 사먹어 본 적 있는데 국물 위에 돼지기름이 둥둥 떠다니거나 아니면 맹물을 끓여낸 듯싶거나 둘 중 하나라 통 맛을 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아는 돼지국밥의 핵심은 돼지고기 부산물에서 우려낸 국물이되 이게 돼지고기 부산물에서 우려낸 국물이 맞나 싶을 만큼 담백하게 국물을 우려내는 방법에 있지 않나 한다. 이 담백한 국물에 과거에는 돼지 머리고기나 내장을 넣었다 하는데 내가 부산에서 즐기는 돼지국밥에는 질 좋은 항정살 등 돼지고기 순살이 들어간다. 그리고 부산 사투리로 정구지라 하는 부추무침을 곁들여야 부산식 돼지국밥의 완성이라 할 수 있겠다. 부추와 다른 정구지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돼지국밥에 곁들이는 부추무침은 특별한 데가 있다. 숨이 살아 있는 파릇한 부추를 갖은 양념에 갓 무쳐내어 돼지국밥과 함께 내놓는데 이 부추무침을 반찬 삼아 따로 먹는 사람은 거의 없고 팔팔 끊는 돼지국밥에 아낌없이 투척하여 함께 먹는 것이 돼지국밥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 아닌가 한다. 이는 끓는 국물로 파릇한 부추의 숨을 죽이는 것 동시에 국물 자체를 먹기 알맞게 냉각시키는 효과가 있을뿐더러 부추무침의 양념으로 먹기 좋게 국물 간을 하는 것이다. 이제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살짝 맛을 볼 때, 간이 부족하다 싶으면 곁들여 나오는 새우젓으로 적당히 간을 하면 된다. 작은 그릇에 딱 한 입 후루룩 떠먹을 수 있을 만큼 나오는 소면은 국물이 식기 전에 말아 먹어야 하고 신김치, 고추, 마늘 그리고 고추장과 된장을 적절히 배합한 막장은 그것들이 빠져서는 돼지국밥의 제 맛을 즐길 수 없기에 조연이 아니고 돼지국밥을 구성하는 필수요소라 하겠다.
지난 여름휴가 기간 중 노모 홀로 계시는 부산 본가에서 며칠 보냈다. 부산에 머무는 동안 옛 친구도 만나고 해운대 달맞이길 산책도 하고 금정산성 산길을 따라 짧은 산행도 다녀왔다. 그리고 산행 후 동네 재래시장에 자리 잡은 늘 가는 그 집 돼지국밥집에서 부산 막걸리 생탁을 반주 삼아 특 돼지국밥 한 그릇 후루룩 비워냈다. 그제야 포만감과 함께 내가 부산에, 고향에 있구나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돼지국밥은 어릴 때 먹던 음식도 아니고 딱히 부산과 연관 지어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음식인데 다들 돼지국밥을 부산 음식으로 알고 나 또한 부산에서 돼지국밥 한 그릇은 사 먹고 와야 부산에 다녀왔다는 느낌이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가 전통으로 알고 있는 것 대부분이 동 시대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고 있는 기억의 교집합 같은 것이 아닐까? 그나저나 휴가 중 담아온 못 찍은 돼지국밥 사진을 보니 지금이 저녁때여서 인지 여기서 서울이라 그런지, 배가 고프다.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