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노스 요크셔 휘트비
Whitby, North Yorkshire, England
2013. 7.
제임스 쿡(James Cook)이라는 사람이 있다.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기에 나오는 쿡 선장, 캡틴 쿡(Captine Cook), 바로 그 사람이다. 탁월한 항해가이자 탐험가로 알려진 쿡은 18세기 당시 영국에는 아직 알려진 것이 많지 않았던 미지의 대양이자 대륙 태평양과 오세아니아를 항해하여 그 지역에 대한 정교한 항해 및 지리 정보를 자신의 조국에 제공함으로써 큰 업적을 남겼다. 그가 제공한 정보를 바탕으로 영국은 태평양 위에 떠있는 많은 섬들과 궁극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를 그들의 식민지로 삼을 수 있었다. 항해를 통해 그가 보여준 리더십, 용기, 항해술 등 개인적 자질을 살펴볼 때 그는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음에 분명하고 그의 별칭인 캡틴 쿡(Captain Cook)은 그에게 썩 어울리는 것이지만 우리가 그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이유 역시 명백하다. 냉정하게 말해 그는 18세기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던 영국의 잔혹한 식민지 침략의 첨병 역할에 충실했던 사람이었으며 그에 걸맞게 죽었다. 1779년 쿡의 함대는 3차 탐사 항해 중 하와이에 상륙했고 그곳 선주민들과 알력을 일으킨 와중에 쿡 본인을 포함하여 그 부하들이 선주민들에게 칼에 찔리고 곤봉을 맞아 목숨을 잃었다. 하와이는 미지의 대륙이 아니었고 이미 그곳에는 오랜 세월 선주민이 삶의 터전을 가꾸고 있었던 곳이다.
지난 해 봄 북해에 면한 영국 북서부의 조그만 항구도시 휘트비에 다녀왔다. 아름다운 휘트비와 넓은 북해 바다를 굽어보는 언덕 위에 오르니 동상이 서 있었다. 동상의 해설판으로 그것이 제임스 쿡의 동상임을 알았고 그의 고향이 휘트비임을 알았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이었던 제임스 쿡은 당시로는 드물게도 농장주의 배려로 학교 교육을 받았다 하니 어릴 때 주변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영민했을 것이다. 졸업 후 휘트비와 런던을 오가는 화물선의 선원으로 바깥세상으로 나간 쿡은 항해술과 지도제작술을 배웠고 이를 바탕으로 군대에 들어가 그야말로 잔다리를 밟는 출세 과정을 거쳐 영국 해군의 원양 탐사선 선장이 되었다. 고향을 떠난 제임스 쿡은 휘트비로 돌아가지 않았으며 런던에 거처를 정한 후 탐사가 되었건 침략이 되었건 먼 대양으로 나가 목숨을 잃어 휘트비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렇기로 바다가 보이는 휘트비 언덕 위에 제임스 쿡의 탐사선이자 휘트비의 조선소에서 건조된 레졸루션호(HMS Resolution)의 양각 부조가 새겨진 받침대 위에 서서 한 손에 항해용 디바이더를 쥐고 북해 먼 바다를 바라보는 모습의 제임스 쿡 동상을 쳐다보는 내 마음이 복잡했다. 여행 후 검색으로 제임스 쿡의 동상은 런던 그리니치를 포함하여 여러 곳에 세워져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의 행적에 대한 냉정한 역사적 평가를 따로 논하기로 하자면 수구지심(首丘之心)이라 했던가, 한 인간으로서 제임스 쿡의 삶을 되 집어 보기로 휘트비의 언덕 위 제임스 쿡의 동상 앞보다 더 좋은 자리는 없지 싶었다.
제임스 쿡의 초상화, 런던 그리니치 국립해양박물관 소장
James Cook portrait by Nathaniel Dance-Holland, c. 1775, National Maritime Museum, Greenwich, London
영국 노스 요크셔 휘트비
Whitby, North Yorkshire, UK
2013. 7.
BGM: The Anchors Weighed by Royal Philharmonic Orches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