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세이 퍼시픽 기내
2017. 4.

꼽아보니 벌써 십 여년 전 일이다. 세월 어쩌면 이토록 쏜 살 같단 말인가? 2006년에 나는 출장 연수를 빙자한 홍콩 유람을 다녀왔다. 요즘은 눈 먼 돈이 나를 쏙쏙 피해 다니는 것 같지만 그때는 눈먼 돈으로 해외 유람을 다니는 일이 주변에서 흔했다. 연수는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일정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소규모 그룹을 지어 홍콩의 유명한 핫 스팟들을 찍고 다녔는데 나로서는 별 관심이 없었던 수족관과 돌고래쇼 관람 스케쥴이 마련되어 있었다. 기억하기로 바다 쪽 전망이 기막힌 케이블카를 타고 해양테마파크 같은 곳에 도착했는데 갑자기 어마어마한 숫자의 단체 관광객들이 우리 일행을 포위하듯 몰려 들었다. 그때 우리 일행의 가이드를 맡았던 분의 표현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중공군들이 인해전술로 쳐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작전 상 후퇴가 불가피하다며 양해를 구하고는 우리 일행의 관람 일정을 바꾸어 버렸다. 중국 대륙에서 홍콩에 여행을 온 단체 관광객들이었는데 그 인해전술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다 싶을 만큼 엄청난 수효에 나도 놀랬다.

 

전쟁을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세대에게 중공군과 인해전술 그리고 1.4 후퇴라는 낱말은 퍽 익숙하다. 6.25때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낙동강에게 작별을 고하고 38선을 돌파한 우리 국군과 유엔군은 파죽지세로 북괴를 몰아 부쳐 평양을 수복하고 압록강에 도달하여 북진통일이 눈 앞에 있는 듯 했으나 중공군이 인해전술을 무기로 참전하여 불가피하게 작전상 후퇴, 1.4 후퇴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던 인해전술이란 인명손실에 아랑곳 없이 상대를 압도하는 병력을 전선에 일시에 투입하여 승리를 얻는 방식이었다. 심지어 중공군은 돌격하는 부대 맨 앞줄 병사들에게만 무기를 쥐어주고 그 병사가 총탄에 쓰러지면 빈 손으로 그 뒤를 따르던 병사가 죽은 병사의 무기를 들고 재차 돌진시키는 인명을 경시하는 무지막지한 전투 방식으로 전투를 치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리고 후방에는 무장한 독전대가 지키고 있어서 무서워 후퇴하는 아군 병사들에게 총질을 했다던가? 그러니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라 차라리 적진을 향해 돌진하다 죽는 길을 택하도록 하는 비열한 전술이 또 인해전술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랬을까? 6.25 때 미군 또 미군의 지원을 받는 우리 국군과 유엔군이 제2차세계대전 후 잉여 무기를 아낌없이 쏟아 부을 수 있는 강점이 있었다면 당시 중공군은 1937년부터 1949년까지 이어온 중국 내전과 일본과의 중일전쟁을 경험한, 당시 그 어느 나라 군대보다 실전경험이 풍부한 군대였다. 그러므로 실제 중공군이 자기 군대 병사 목숨을 파리 목숨으로 여기고 인해전술로 내몰았는지 몰라도 다른 한편으로 1.4후퇴를 불러온 당시 유엔군의, 국군의 전략적, 전술적 패착과 실패를 일부나마 숨기려는 의도로 중공군의 인해전술을 과장한 면이 없지는 않나, 이제 세상이 좋아져서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된다.

 

지난 주중에 갑작스레 태국 방콕 출장 일정이 잡혔다. 이 황금 연휴에 인천-방콕간 직항 항공권은 진즉 동이 난 모양이고 어쩔 수 없이 홍콩을 경유하는 환승 항공편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출장은 여러 이유로 내게는 아주 최악인 출장이었는데 토요일 오전 방콕에서 출국 수속을 마치고 탑승 게이트 앞에 앉으니 마음이 그리 편할 수 없었다. 그런데 방콕 발 홍콩 행 케세이 패시픽(Cathay Pacific) CX750편에 탑승해보니 기내가 마치 돋대기 시장과 같이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기내 승객 대부분은 중국 대륙에서 온 사람들로 짐작되는 단체 관광객이었다. 10년 전 홍콩을 접수한 중공군이 이제 방콕까지 점령했구나 싶었다. 고성 심지어는 고함이 오고 가는 가운데 객실 승무원들은 아주 진이 빠져버린 듯 보였고 어찌어찌 승객들을 자리에 착석 시키고 항공기가 이륙한 가운데서도 소란스러움이 쉽게 가라 앉지 않았는데 항공기가 정상 운항 고도에 도달하자 마자 승무원들은 마치 전투에 임하 듯 기내 복도를 뛰어 다니다시피 하며 재빠르게 기내식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그렇지, 사람이란 모름지기 ‘맥여야’ 입을 다무는 법이니. 기내식 효과가 통했는지 소란스러웠던 기내가 일순 정적에 휩싸였다. 그때 내 곁을 오가는 승무원들의 면면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내가 본 객실 승무원 10명 중 8명이 남자 승무원이었다. 하기야 아비규환 같은 객실 분위기를 어찌 여승무원들로 감당할 수 있으랴. 그 순간 그 상황에서 이미 십 여 년 전에 들었던 그 중공군과 인해전술이라는 말을 다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기내 식사 후 식기 수거 마저 끝나자 배 부른 중공군들이 다시 술렁일 조짐을 보였다. 이륙부터 내 옆자리에 앉은 할매는 이코노미 좌석이 마치 본인 거실 소파인 양 두 팔을 한껏 열어 젖힌 채 세상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있었고 나는 구겨진 듯 좌석 오른쪽에 딱 붙어있어야 했다. 오른쪽으로 상반신의 체중을 떠안은 허리가 욱신거리는 조짐을 보였다. 어른을 공경하라는 공맹의 말씀을 숭상하는 동아시아인으로 참아야지 어찌하겠는가? 평생 고단한 노동을 짊어지고 살아왔을 그 할매 얼굴에 경로 관광에 나선 우리 어머니 얼굴이 겹쳐 보였다. 승무원과 승객 사이 북경어와 광동어 그리고 영어가 서로 통하지 아니하고 어지러이 떠다니고 있어도 괜찮았다. 기내 비행경로를 표시하는 스크린을 보니 홍콩 착륙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이어진 귀국 환승편 홍콩 발 인천 행 케세이 패시픽 CX416편 객실 승무원은 전원 여성이었다. 방콕 공항에서 발권할 때 티켓을 끊어주던 항공사 직원의 호의였던지 CX416편 좌석에 앉아보니 이코노미 치고는 가장 좋은 제일 앞자리 창측 좌석이었고 힘들었던 방콕 출장 일정도, 이전 기내에서의 소란도 다 잊혀질 만큼 기내에서 바라보는 하늘 위에서의 일몰과 제주도의 불빛은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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