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3.

나로 말하자면 산책 중 개줄 풀린 개를 만나면 인상 찌푸리고 길냥이가 내 곁으로 다가오면 재수 없다며 돌을 던지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영국에서 고양이 키우는 집과 친분을 맺어 귀국 후 아내와 아이가 제일 먼저 한 일 중 하나는 나의 동의가 아닌 그렇다고 거부도 아닌 어정쩡한 갈등 중에 잽싸게 고양이 한 마리 집에 들인 일이었다. 처음 며칠 간 온 집에 고양이털이 풀풀 날리는 것을 보고 질겁했지만 고양이를 집에 들인 일은 아주 잘한 일이었다. 고양이는 내 마음마저 뺏어 갔다. 하지만 나는 고양이와 어떻게 사귀는 지 고양이와 어떻게 사는지 몰랐다. 내 짝사랑에도 불구하고 그 고양이, 첫냥이는 내가 ‘고양이 주제에…’라며 서운함을 표시할 만큼 나를 질색했다. 고양이도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고 고양이와 함께 살기 위해서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도 그때는 몰랐다.

 

첫냥이에 정을 붙인 아들은 2년 전 고양이 한 마리를 주워왔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번에 품종을 알아볼 만큼 족보 있는 첫냥이와 달리 주워온 고양이의 생김새나 털 빛깔은 내가 익히 알던 내가 훠이훠이 쫓아냈던 길냥이의 것 딱 그것이었다. 게다가 심하다 싶을 만큼 행동이 조심스러운 첫냥이에 비해 주워 온 고양이는 산만하기 이를 데 없었고 화분을 마구 들쑤시는 등의 사고를 벌리기 일 수였다. 고양이도 개체마다 특성이 있다는 것을, 개성이라는 말을 고양이에게 붙여도 된다면 고양이도 개성이 제 각각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어쩔 수 없이 주워 온 고양이를 베란다로 격리조치 했다. 주워 온 고양이의 등장에 아내와 아들이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첫냥이가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는 것도 한 몫 했다. 첫냥이가 예민하거나 말거나 베란다로 격리 당하거나 말거나 주워온 고양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천하태평이었다. 아들은 주워온 고양이에게 태평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주워온 고양이의 거세 수술을 시켰는데 수술 하고 온 날 수술 후유증에다 마취 기운이 남아 낑낑대고 있는 주워 온 고양이를 도저히 베란다에 둘 수 없었다. 그 측은지심에 편승하여 그날로부터 실내 재진입에 성공한 주워 온 고양이 태평이는 우리 집을 점령했다. 첫냥이가 경계를 풀지 않아도 예민해도 상관없다는 투로 태평이는 천하태평으로 온 집 안을 헤집고 다녔고 결국 첫냥이도 도저히 당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서로 터치하지 않는 선에서 고요한 공존을 택했다.

 

오늘 식구들이 모두 잠든 늦은 시간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집안에 들어서니 늘 그런 것처럼 주워 온 고양이 태평이가 현관 앞에 앉아 있었다. 인기척에 대한 경계 때문인지 나를 반기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나를 앞질러 방에 들어간 주워 온 고양이는 늘 그런 것처럼 내 앞에서 발라당 몸을 뒤집고 두 다리를 바르르 떨었다. 발바닥으로 고양이의 배를 간지럽혀 준 다음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어느 샌가 내 다리에 지 엉덩이를 딱 붙이고 꼬리로 내 다리를 문질러 댄다. 꼬리친다는 말이 이로부터 나왔구나 하는 것도 주워 온 고양이 때문에 알았다. 오늘 밤도 주워 온 고양이는 내 발 밑에서 나와 함께 잠을 청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좋아 그러는 것인지 전기장판의 온기를 탐하는 본능 때문인지 나는 모르겠다. 주워 온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나로 말하자면 요즘 산책 중에 개줄 풀린 개를 만나면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고 길냥이를 만나면 돌을 던지는 대신 짠한 마음에 안부부터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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