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namsa
UNESCO World Heritage site as 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
전남 순천 선암사
2023. 10. 17.
십 수 년 전, 참 힘든 나날들이 있었다. 노래 가사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 모든 일들이 나를 향해 돌아앉은 것처럼 느껴지던 날들이었다. 그 시절 정호승의 시 「선암사」가 작은 위로가 되었다. 시처럼, 선암사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풀잎들이 내 눈물을 닦아 주리라, 세파에 지쳐 고개 떨구고 선암사 ‘깐뒤’에 쭈그려 앉아 남몰래 우는 내 등을 등 굽은 소나무가 토닥여 주리라 믿고 싶었다. 그래서 힘든 날은 시 「선암사」를 아무도 몰래 혼자 암송하고 선암사 해우소와 등 굽은 소나무를 마음 속에 그려보며 위로 받았다.
그 선암사를 이번 가을에야 처음 가봤는데 선암사 참 좋더라는 소박한 감상 이외 달리 덧붙일 말은 없다. 그저 선암사 경내를 천천히 걸으며 무량수각(無量壽閣)에 이르니 현판에 노완(老阮)이라는 글씨가 보여 추사 김정희의 글씨려니 했고 그 너른 마당에 선암사의 등 굽은 소나무가 누워 있었으며 맞은편에 선암사의 깐뒤, 해우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거기서 잠시 쉬어 가자며 걸음을 멈추고 세 그루 잘 생긴 은목서 나무 그늘 아래 앉으니 진한 꽃향기 가득하고 눈앞에는 이 가을에 나와 같이 꽃향기에 취한 선암사의 벌들이 윙윙거리며 날아다녀서 자리를 털고 일어서기 쉽지 않았다.
UNESCO World Heritage site as 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
2023. 10. 17.
배경음악
꽃별 해금 연주
「철길 옆에 핀 작은 꽃들」
Small Flowers Near by the Railroad by Ccotbyel
선암사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 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 시집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창비,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