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서퍽 입스위치 골프 클럽
Ipswich Golf Club, Suffolk, England

2011. 8. 14.

 

영국 생활 중 잠깐 골프에 재미를 붙였다. 휴일 아침 느긋하게 일어나 아점 먹고 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골프장에 혼자 도착해서 장비를 챙긴 다음 골프 가방 얹은 손수레 밀고 클럽 하우스에 도착해 그린 피 18파운드 내고 코스에 오른다. 요즘 환율로 3만원 정도 되려나? 회원권? 없다. 그린에 오르기 전 2파운드 더 내고 망사주머니에 가득 담긴 중고 골프공도 산다. 그렇게 혼자 시작하는 라운딩을 하루 종일 돌아도 누구 하나 머라는 사람 없다. 공을 페어웨이 밖으로 날려 먹으면 그 까이 꺼 망사에 담긴 중고 골프공 하나 더 꺼내 그 자리에서 다시 치면 그 뿐이다. 간간히 잘친 샷이 나와도 나이샷을 외치는 캐디는 없지만 내가 재미나니 그뿐 아닌가? 파 4인 7번 홀을 돌다가 잠시 골프장 옆 지천으로 펼쳐진 유채밭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어도 엎어져 사진을 찍고 있어도 어서 치라 채근하는 놈도 없다. 뒤를 돌아보니 멋진 샷으로 공을 내 옆에 떨어뜨린 나처럼 혼자 골프 치는 아저씨가 골프 가방 어깨에 매고 씩씩하게 다가 온다. 괜찮다. 썩소 한방 날려주고 먼저 치고 가시라 손 한번 흔들면 된다. 내가 날린 썩소 한방에 대한 보답으로 썩소 한 열방 쯤 되돌아 온다. 쉬엄 쉬엄 세월아 네월아 코스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그날 라운딩을 끝낸다. 칼칼한 목을 재우려고 클럽 하우스에 딸린 펍(pub)에 가보면 동네 골프장 죽돌이들 클럽하우스 펍에 다 모였다. 골프장 펍을 찾을 때마다 말석이나마 그 죽돌이 클럽에 끼고 싶었는데 미국도 아닌 영국에서 네이티브들과 일하며 영어 딸려 더러 진땀 꽤나 흘렸던 1인, 끝내 동네 죽돌이 클럽에는 가입하지 못하고 주재 기간 다 마치고 귀국하고 말았다. 이 역시 영국 생활 끝에 남겨진 아쉬움 중 하나다. 귀국 후에 한번도 골프장에 가보지 못했다. 골프 장비 일습은 창고에서 먼저만 뒤집어 쓰고 앉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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