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졸업생의 취업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내가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던 때도 그랬고 아마도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 경우도 지잡대 경영학부의 하찮은 이력서를 손에 쥐고 그 어려운 취업난을 뚫기 위해서 공부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기 때문에 대학 졸업반 시절 학교 도서관 출입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느 날 같은 학과 친구와 도서관 휴게실에서 합석을 하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고 가던 와중에 세무직 9급 공무원이 되기 위해서 전력투구를 하고 있던 그에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할 참이라면 좀 더 높은 목표를 두지 겨우 세무직 9급이 뭐냐고 넌지시 물었는데 정색을 하며 돌아온 대답이 이랬다. 세무직 9급 공무원이 되면 돈을 갈고리로 끌어 모을 수 있다는 것과 세무공무원의 특성 상 직급이 낮은 현장 공무원이 되어야 갈고리로 담을 수 있는 푸대자루가 더 커진다는 것이다. 그의 대답에 경악할 만큼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세상물정을 몰랐다. 그의 말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깡마른 그의 얼굴 위에 번들거리는 그 비열한 기름기에 기겁했고 대체 나라가 어찌 되려고 이런 이야기가 대학교 도서관 안에서 천연덕스럽게 오고 가는가 싶어 기겁을 했다.
나는 그가 그토록 목을 매고 달려들었던 9급 세무공무원이 되었는지 그렇게 9급 세무공무원이 되어 정말 돈을 갈고리로 끌어 모았는지 그 후일담은 모르겠다. 다만 항공회사와 연이 있다는 이유로 이코노미 클래스 항공권을 끊은 다음 공짜로 비지니스 클래스 항공권으로 바꾸어 줄 것을 강권하다시피 업체에 부탁하는 공무원이 요즘도 있음을 나는 알고 있고 9급도 아닌 1급의 고위 공무원들이 독직 혐의로 구속되었다는 뉴스를 보고 있다. 그렇게 구속된 전직 장관은 장소와 상대와 액수를 가리지 않는 잡식성을 보였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파렴치한 공무원과 잡식성 장관은 특별한 예외에 속하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벌써 10년을 훌쩍 뛰어넘은 그 옛날의 세무공무원 9급 지망생의 수효가 오늘 날에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으리라 짐작하고 있고 오늘도 대학의 도서관에는 돈을 갈고리로 끌어 모으겠다는 굳은 신념으로 9급 세무직공무원 수험서에 목을 매고 밤잠을 잊으며 공부하는 대학생이 여전히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그 10여 년의 세월 동안 변한 것이 있다면 그런 이야기를 듣고도 내가 이제 전혀 경악하거나 기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뿐이다. 그저 잠시 씁쓸해할 것이고 세상이 그러려니 하며 금방 잊어버리고 말 것이다. 200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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