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복천박물관
Bokcheon Museum, Busan, Korea
2019. 9.
부산 복천박물관 자리는 내 어릴 적에 언덕 위에 게딱지같은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자리였고 그 언덕 위에서 내가 연 날리며 놀던 자리였다. 1980년대 그 자리에 거대한 가야시대 고분군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판잣집들이 철거된 후 본격적인 유물 발굴이 시작되었다. 이후 5세기 전후 가야시대 유물이 엄청나게 쏟아져서 발굴지 인근에 발굴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인 부산광역시 복천박물관이 들어섰으며 발굴 현장을 야외공원으로 조성 주요 유물이 출토된 고분 자리에 회양목 울타리를 쳐 조경과 함께 보전 표식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특히 많은 유물이 출토된 53호분과 54호분은 발굴 현장을 복원 야외전시장으로 꾸며 놓았다.
오늘날 부산을 포함한 경상남도 지역에 뿌리를 둔 고대 가야는 철의 왕국으로 알려진 만큼 둥근 고리가 달린 큰칼 환두대도(環頭大刀)나 철제 갑옷 같은 정교한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가야지역에서는 철이 많이 나서 이를 이웃한 중국과 일본에 수출하였다는 중국 역사 기록이 있는데 가야고분에서 출토되는 덩어리 쇠 철정(鐵鋌)은 이러한 기록을 증명할 수 있는 소중한 유물 자료라고 할 것이다. 출토 당시 모습으로 복원된 복천동 54호분 야외전시장 사진에도 환두대도와 철정 유물 발굴 상황이 정확하고 자세히 담겨 있다. 철정이 출토되었다는 것은 가야시대 이 지역에서 철광석을 제련할 수 있는 금속가공기술이 발달하였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것은 가야시대에 철의 녹는점인 섭씨 1,500도 이상 고온으로 소성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철과 함께 대표적인 가야 유물이 경질토기이다. 경질토기의 경우 섭씨 1,200도에서 구워내므로 이미 철 가공 기술을 가진 가야 사람들이 질 좋은 경질토기를 구워내는 것은 일도 아니었으리라. 가야의 고분에서는 이 경질토기들이 무수히 출토되어 그 형태에 따라 고분의 조성 시기를 비교하고 비정하는 기준점이 되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 복천동 가야 고분에서는 철갑옷, 정교한 환두대도 뿐만 아니라 만주 에서 발견된 고구려 고분 통구 12호분 우리가 볼 수 있는바 그대로 또한 이른바 광개토대왕비 신묘년 기사에서 확인하는바 그대로 위대한 만주벌판을 호령한 우리 고구려의 중장갑 기병의 흔적을 실물로 엿볼 수 있는 말 갑옷까지 출토되었으니 이 엄청난 유물을 두고 솔직히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어찌 토기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위 사진들은 추석 때 산책 삼아 가까운 복천동 고분 유적지를 한 바퀴 돌며 폰카로 담아온 사진들이다. 쓸모도 딱히 없는 못 찍는 사진들을 자꾸 찍어댄 까닭은 아마 그날 날씨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고 이 좋은 날을 만끽하고 있었다는 흔적을 남겨두자 싶었던 것뿐이다. 그런데 며칠 전 『술의 세계사』라는 근래 보기 드문 양서를 읽으며 머리속에 자연스럽게 그 많은 가야의 토기들이 떠올랐다. 그제야 고대 가야인들이 고분에 부장하고자 하였던 것은 토기가 아니라 무덤의 주인들이 저승길에 가는 동안 요기할 분명 술과 음식이었던 것이고 토기야 말로 그 음식을 담는 용기에 다름 아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고 말 갑옷까지 두른 중장갑 기병보다 가야 시대 무덤의 주인들은 무슨 술을 마시고 어떤 음식을 즐겼을까 궁금했다. 2019
부산 복천박물관
Bokcheon Museum, Busan, Korea
2019. 9.
배경음악: 꽃별의 해금연주 「철길 옆 작은 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