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NTAX ME Super

c. 2009

 

오랜만에 옛 폴더를 뒤지니 사진찍기에 처음 재미를 붙이던 시절 사진들이 열린다. 건질만한 사진은 없지만 그나마 눈길을 잠시 붙드는 사진은 필름 카메라로 찍은 것들이다. 그러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필름 카메라를 놓아 버렸다. 겨우 서른 두판 사진을 찍기 위해 필름을 사서 갈아끼워야 하는 번거로움, 게다가 찍은 사진을 확인하려면 반드시 현상과 인화를 거쳐야 한다는 그 번잡함 때문이었고 그런데다 필름 카메라가 내어놓은 결과물 대부분은 노출 과부족이거나 초점이 맞지 않은 탓이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후자의 탓이 더 컷다. 내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던 시절은 이미 디지털 카메라가 대세인 시절이었고 핸드폰에 쓸만한 폰카가 붙기 시작하던 시절이다. 그러므로  필름 카메라를 손에 쥐었을 때 나는 필름 카메라의 제약과 한계를 분명히 알고 그것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너무 쉽게 필름 카메라의 제약과 한계에 실증을 느끼고 말았던 것이다.

노출과 초점을 사진 찍는 사람이 직접 조절해야 하는 필름 카메라로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는 많은 학습과 연습이 필요하고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데는 비용은 물론이려니와 품이 많이 들며 처음부터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학습도, 연습도 않고 품도 팔려 하지 않으면서 좋은 결과물을 얻으려 했는데 그 결과를 얻지 못하니 필름 카메라를 놓아버렸던 것이다. 그때 필름 카메라로 담은 못 찍은 옛 사진의 색감은 일견 요란하나 볼수록 따스해서 디지털 카메라로는 얻지 못할 그런 종류의 느낌이다. 연습하지 않고, 품 팔지 않고 우연의 힘을 빌려 겨우 건진 몇 장의 사진은 이 늦은 밤, "처음처럼"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그런데 괜한 이야기를 꺼낸 것일까? 매사 처음 마음 먹은 순간을 기억하자며 시작한 잡문은 결국 이 늦은 밤 소주 한 잔 생각을 부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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