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9. 23.

서울역

 

대학 졸업하고 서울에 직장을 얻어 거처로 정한 곳이 청파동 하숙집이었다. 첫 직장이 명동에 있었는데 지하철 4호선 숙명여대입구역에서 명동역으로 출퇴근이 편했고 무엇보다 와이셔츠를 매일 세탁해주고 다려준다는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 유혹이 그 하숙집으로 단번에 결정해버린 결정타였으며 한편으로 숙명여대 정문 앞에 자리 잡은 하숙집이라 여대생들과 하숙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는 은근한 기대도 있었으리라. 그러나 막상 하숙집에 입주해서 하숙생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여대생은 하나도 없고 나와 별 차이 없는 기대 때문에 자리 잡은 나 같은 총각 직장인들만 바글바글 했다.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는 고객 서비스의 일환으로 일주일에 한번 씩 하숙생들이 양껏 먹을 수 있을 만큼 삼겹살 구워 저녁상을 내었고 그런 날은 주류 유통 회사에 다니던 청년이 소주를 아낌없이 쾌척하여 하숙집 저녁상 자리가 더욱 화기애애하고 풍요로웠다. 돌이켜보니 하도 오래 전이라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내 룸메이트가 제약회사 영업사원이었던 것만은 기억나는데 그것은 어느 삼겹살 저녁 시간에 술에 취해 그 친구가 마치 군대에서 얻어맞으며 외운 암기사항을 고참들 앞에서 풀어 놓는 듯 진지한 표정과 목소리로 자기가 취급하는 약품의 이름과 성분, 효능 따위를 여러 하숙 동기들에서 줄줄 풀어놓던 장면이 기억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기야 아무리 얻어맞아도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국방부의 시계는 어김없이 돌아가고 결국 제대하는 그날을 맞게 되는 군대 생활과 달리 시작은 있으나 그 끝을 알 수 없는 직장생활은 세상에 나와 먹고 사는 일은 더욱 치열하고도 엄혹했던가. 그 제약회사 영업사원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청파동 하숙집에 여대생은 없었지만 이른 아침 하숙집을 나와 출근길에 숙명여대입구역을 향해 청파동 언덕길을 내려가는 동안 등교하는 많은 여대생들의 얼굴과 마주쳤다. 그때 등교하던 여대생들도 지금 나처럼 이십 여 년의 세월을 건너뛰었으리라.

청파동에서의 하숙생활은 여러모로 편한 점이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하숙생활이 내 생활습관과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몇 달 후 하숙생활을 청산하고 혼자 사는 거처를 정한 후 결혼할 때까지 다시 하숙집 생활을 하지 않았다. 그 사이 직장을 옮겼고 오가며 청파동 인근을 지나치기는 했어도 다시 청파동을 찾을 일도 없었다.


 

휴일 아침 늦잠을 깨우는 핸드폰 진동 때문에 핸드폰을 열어 보니 동료 직원의 모친상 부고가 떠 있었고 장례식장이 경북 포항이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늦잠에서 깨어 창밖을 보니 자전거 타기에 더 없이 좋은 날씨였다. 상을 당한 동료 직원을 떠올려 보니 그와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었는데 송금으로 조의를 표하겠다는 적은 쪽 인연을 생각하는 사이 동료 직원 경조사 잘 챙기기로 유명한 다른 동료의 채근이 내 핸드폰에 불이 나게 쏟아져 얼떨결에 그와 함께 포항행 고속열차로 조문을 떠나기로 약속하고 말았다. 나의 늦은 휴일 기상을 기다렸던 가족과 함께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약속한 서울역에 도착해보니 서울발 포항행 고속열차의 출발 시간은 여유 있게 남아 있어 새 서울역 쇼핑몰 이곳저곳을 구경하다 서울역 서쪽 출입구 쪽으로 나가보니 마침 청파동 언덕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눈에 들어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청파동을 떠난 후 서울 몇 곳의 거처를 옮기며 또 여러 곳을 다니는 사이 서울도 얼굴을 참 많이 바꾸었는데 내가 서울에 처음 정착해 거처를 정했던 청파동 그 언덕만은 멀리서 보기에 별로 변한 것이 없는 듯 보였다. 저 청파동 언덕의 가옥들 사이 어느 곳엔가 내 첫 서울 살이 흔적들이 남아있으리라는 반가움 또는 반가움을 넘는 복합적인 감정들이 못 찍은 사진을 찍은 짧은 순간 내 마음 속에 일렁이고 있었다.

포항에 가서 삼십 분짜리 짧은 조문을 마치고 서둘러 서울로 되돌아 온 늦은 밤 못 찍은 사진 한 장을 앞에 두고 잡문 몇 자 남긴 후 그 제목을 "그리운 청파동"이라고 적어 놓으니 그때 지금이나, 아니 오히려 지금 더욱 서울살이는 만만치 않은데 내가 정말 그리운 것은 청파동이 아니라 청파동에 남겨 놓은 내 첫 서울 살이, 그 시절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노래처럼, 차도 사고 집도 사고 서울 여자 만나 장가도 갔는데 이놈에 서울살이는 여전히 만만치 않고 처음에는 자의건 타의건 기껏 오 년을 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사이 이십 여 년을 훌쩍 넘어버린 만만찮은 서울살이를 끝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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