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로마인 이야기
글쓰는 작가들은 대개 먼 과거 영웅담을 좋아한다. 먼 과거일수록 사료가 부족할 것이라 역사가 미처 메우지 못하는 그 공백을 영웅담을 저술하는 작가가 그의 과장, 무시 심지어 상상으로 메울 수 있는 여지를 주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꽤 여러 해 동안 순차적으로 출판되어 열 다섯 권째 마지막 권이 완간 되었다. 베스트셀러 『로마인 이야기』가 나와 같은 독자들을 사로잡은 이유를 따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로마 역사를 편년에 따라 써 나간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가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과 기호를 바탕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 완연하게 느껴져 읽기 부담스러웠다는 점은 기록해두고 싶다. 예를 들어 그녀는 로마제국과 그 영웅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Caesar)와 저술을 통해 시공을 초월한 연애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던 것이다. 의미와는 별개로, 이러니 내가 어찌 『로마인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멋진 연애담이야말로 내 주된 관심인 것을. 하지만 대개의 로맨틱 연애담이 그렇듯 로마와 시오노의 연애담 역시 남녀의 사랑만이 지고의 가치로 그려질 뿐 주변 상황에 대해서 무심하다. 시오노 나나미는 제국 로마제국이 베풀었던 소위 관용정책의 사례로 부언에 중언을 거듭하여 인문학에 능한 그리스 출신 노예들과 또한 해방 노예의 미담을 늘어 놓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단 한번도 문명의 저쪽 그늘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노예제도의 야만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온건한 노예제도라는 황당한 생각은 강요된 노예 상태 속에 깃들인 비인간적 특성을 묵살하는 것이다. 키케로는...이런 결정적 발언을 했다. 바다에서 위험에 처해 배를 가볍게 해야 할 때에는 좋은 말 보다는 늙은 노예를 바다로 던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대 카토 늙고 병든 동물과 늙고 병든 노예 등 쓸모 없는 것들은 빨리 처분하라고 독자들에게 권했다...노예제는 결국 어떤 부유한 개인이 자신의 편의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다른 한 개인을 야비하게 착취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카이사르의 죽음』중에서
노예제도는 문명화된 제국 로마의 경제를 지탱하는 지주 역할을 했다. 기원전 73년에 일어난 노예 스파르타쿠스(Spartacus)의 봉기는 야만적이고 야비한 노예제도에 대한 처절한 저항이었다. 검투사 출신 노예 스파르타쿠스의 봉기는 노예뿐 아니라 부자들의 착취에 견디다 못한 목동, 농노, 빈농들이 합세하여 12만명이 무려 2년 동안이나 로마의 국체를 뒤흔든 큰 사건이었으며 훗날 로마 삼두정치의 일두이며 폭압적인 금권 귀족정치의 최고 권력자인 폼베이우스(Pompeius) 가 나서서야 겨우 진압되었다. 봉기한 노예 등의 대부분은 로마 군단과 처절한 사투를 벌이다 숨져갔으며 살아남은 육천 명의 노예는 십자가형에 처해 졌다. 기억해야 할 것은 십자가형이야말로 노예제도와 함께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비열하고 잔인한 형벌이었다는 것이다. 로마 시민은 어떤 대역죄를 짓더라도 십자가형에 처해지지 않았고 오직 이민족과 노예만이 십자가 형벌을 받았다. 후대의 많은 십자가상에서 보는 것과 달리 십자가형에 처해진 죄인의 손바닥이 아니라 손목에 굵은 못이 박혔다. 이것은 중력 때문에 체중을 견디지 못하여 손바닥이 찢어져 십자가에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이었다.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은 과다출혈 등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질식사하게 되었다. 중력은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의 상반신을 아래로 끌어 당겨 늑골을 누르고 기도를 막히게 한다. 그래서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질식하기 직전에 그 기진한 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하여 처절하게 발버둥치다가 이윽고 단 한 줌의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게 될 때 질식사하는 것이다. 대개는 세 시간을 넘기지 못하였다고 하며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스파르타쿠스만이 사흘 만에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 얼마나 잔인한 형벌인가? 대체 시오노 나나미가 말했던 관대한 로마, 팍스 로마나, 세계 시민, 로마의 경계 안에서 벌어진 번영의 이면에 악마와도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감추어져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스파르타쿠스의 봉기, 로마를 뒤흔든 처절한 자유와 인간성 회복 요구에 대한 절규를 그녀는 전 열 다섯 권에 이르는 장대한 저서 중에 몇 페이지를 넘기지 않은 채 그것도 폼베이우스의 무용담의 하나로 간단히 처리해버렸다.
과거 일본 귀족들만이 다닐 수 있었다던 일본 학습원대학을 졸업하고 이탈리아로 건너가 도서관과 유럽 각처의 로마 유물들을 답사하며 로마사에 천착하여 내놓은 방대한 저작들 그리고 그 중에 가장 대표작인 『로마인 이야기』를 저술한 일본 출신 시오노 나나미, 온 세상이 아니라 해도 사람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적절한 비유가 될 지 모르겠지만 그러므로 사람은 계급의 틀에서 벗어나 사물과 사건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어렵다. 이 계급이라는 낱말을 혀끝에 매단 채 중얼거리는 나는 어떤 계급에 속한 걸까? 작가는 자신의 책을 통해 영웅 카이사르와 로마제국과 연애를 했다. 오현제 시대 이후 로마의 쇠락을 다루는 『로마인 이야기』 에 이르러서는 기독교가 로마제국을 쇠퇴시켰다 하고 기독교에 대해 교묘한 논리와 은유로 독설을 퍼붓는다. 그 독설은 마치 쪼글쪼글해진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 보며 바람난 애인이 찾아간 창부를 저주하는 늙은 유한 마담의 그 마음과 무척이나 닮아 있다.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