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이야기

U보트 사기사건

the.story.teller 2020. 5. 24. 20:47

독일 함부르크 U보트 박물관

U-Boot U-434 das U-Bootmuseum in Hamburg

2017. 2.

 

앞서 영화 『특전 U보트』를 소개한 글은 십 여 년 전에 쓴 잡문인데 딱히 포스팅으로 남겨 둘 생각을 않고 있던 것을 이번 함부르크 출장 중에 겪은 황당한, 달리 생각하자니 창피하기도 한 작은 사건 때문에 다시 꺼낸 것이다. 출장 셋째 날은 오후에 일정이 잡혀 있었고 시차 때문에 일찍 잠에서 깨어 호텔에서 가까운 함부르크 항만 쪽으로 산책을 나갔다. 비록 오후부터 흐려지리라는 일기예보가 있기는 했어도 이른 아침 파란 하늘 아래 엘베(Elbe)강에서 불어오는 강 바람은 청량하기 그지 없었다. 그렇게 느긋한 산책을 즐기는 중 강안에 정박 중인 시커먼 잠수함의 모습이 눈에 들었고 그 앞 작은 건물에 “U보트 박물관” (U-Bootmuseum)이라는 간판이 보이는 것이 아닌가? 순간 퇴역한 독일 잠수함 U보트를 박물관으로 개방한 것이란 생각을 했고 U보트야말로 독일을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인데 내가 드디어 독일에서 U보트를 보게 되는구나 하는 기쁨에 바로 10유로짜리 입장권을 사서 잠수함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잠수함 입구에 설치된 안내판을 보고서야 속았다 싶었다. 잠수함은 독일 U보트가 아니라 1972년에 건조된 구 소련의 탱고급(Tango Class) 잠수함이었던 것이다. 소련이 붕괴하면서 수많은 무기들이 폐기되거나 매각되었는데 어느 독일 업자가 고철 신세로 전락한 소련의 잠수함을 사들여 입장료를 받는 박물관으로 개조 전시해놓은 것이었다. 순식간에 속았다는 생각과 함께 매사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들여다보지 않고 일을 저질러 낭패를 보는 내 단점이 고스란히 드러난 해프닝이라 창피한 생각마저 들었다. 입장권을 물어내라 떼를 쓸 수도 없고 이 창피한 해프닝을 누가 엿보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해서 잠수함 내부를 보는 둥 마는 둥 안내된 동선을 따라 서둘러좁은 잠수함을 빠져 나왔고 입장료로 지불한 10유로가 아깝게 생각되어 가슴 많이 쓰렸다. 재빠른 걸음으로 잠수함 박물관에서 한참 멀어진 후에야 핸드폰을 꺼내 몰래 독일어 사전 검색을 해봤더니 우-보트(U-Boot)는 독일 잠수함이 아니라 잠수함이라는 보통 명사였다. 그러니 함부르크 잠수함박물관으로서는 사기를 친 것이 아니었고 사기라며 떼를 쓸래야 쓸 수도 없는 낭패를 나만 보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