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상다반사

서세동점과 코로나 바이러스

the.story.teller 2020. 3. 25. 18:02

지인의 딸이 독일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데 그 분으로부터 요즘 독일 사정을 전해 듣기로, 오늘 아침 출근 지하철 객차 안에 승객이 그 딸 한 사람 밖에 없더라는 것, 독일 의사 중 많은 사람들이 병가를 이유로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것, 독일 병원에서는 진료 중 의사가 마스크를 쓰면 환자에게 불안감을 줄 수 있으니 마스크를 쓰지 말고 진료하라고 권고하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 독일 메르켈 총리가 국민 연설 중 마스크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예방에 도움을 줄 수 없으니 마스크를 쓰지 말라고 공언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나는 그 외신을 인용한 보도를 읽으며 내 눈을 의심했다. 트럼프라는 자(者)가 내뱉은 말도 아니고, 평소 총명한 사람으로 알아온 독일 총리가 어떻게 저런 발언을 국민들 앞에 대놓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마스크가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예방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된다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아직 논란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다만,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더라도 무증상인 사람이 다수고, 이 사람들은 검진을 받기 전까지 자신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으므로 다들 마스크를 착용한다면 최소한 무증상 감염자들의 체외 분비물로 의도하지 않은 바이러스 확산을 줄이는 효과가 있으리라는 점은 딱히 과학적인 연구 검토를 하지 않더라도 상식적인 선에서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사실이다. 이에 더하여, 나는 모두 마스크를 착용함으로써 지금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있으니 서로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을 서로 조심하자는 시각적 신호가 될 수 있으며 이것이 마스크의 효용성에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믿고 있다. 그런데 마스크 착용이 별 소용없다고 독일 총리가 그 국민 앞에 연설을 했다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는 사이 오늘 "유럽 의료진 수 천명 확진 충격...장비 없이 최전선 보내져"라 보도를 접한다. 나는 이런 외신 보도들을 접하며 어쩌면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 세계적 유행이 세계사에 하나의 변곡점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근대 이후 전 세계적인 패권을 누려온 서유럽 사람들에게는 자산들의 사고와 행동 규범이 그 외 나머지 세상 사람들보다 합리적이고 과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오랜 우월감 또는 자신감이 있다고 본다. 그것은 서유럽이 제국주의 침략으로 온 세계, 나아가 그들 표현으로 머나먼 극동(Far East)까지 침략할 수 있었다는, 이른바 서양이 세를 얻어 동양을 점령했다는 서세동점(西勢東漸)에 대한 도덕적, 최소한 결과론적인 당위성을 주장하는 인식과 맞닿아 있으리라.
그런데 이번 코로나 사태를 대하는 서유럽 국가들의 정부나 국민의 행동은 합리적이지 않고 과학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어쩌면 서유럽 사람들에게 퍼져 있는 오랜 우월감 혹은 자신감이 이미 그 시효를 다했다는 것을 이번 코로나 사태로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보는 것이다. 이웃 일본이 19세기 말, 제국주의의 옷을 갈아 입고 이웃 나라들에 대한 침략전쟁을 벌이던 시기, 그들의 한 구호가 탈아입구(脫亞入區) 즉, 아시아 에서 벗어나 유럽 수준으로 진입하자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구호가 최소한 21세기, 일본 본토에서는 구현이 되었는지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두고 행하는 일본의 위정자들이나 국민들의 행태 역시 오늘 서유럽의 그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